주영이에게 물어볼까? 그 남자가 맞아? 지금 그 사람 전화를 기다리는 거야?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 교환은 왜 한 거야? 대체 언제? 그리스에서? 아니면 서울에 와서? 번호를 교환했다는 건 연락을 하겠다, 우연이 아닌 약속을 하고 다시 보겠다는 의미인데, 왜? 그럴 일이 뭐가 있다고. 아, 답답해. 그냥 확 물어볼까. 설마. 너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아닐거야. 설마. 넌 남자친구도 아닌 남편이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요즘은 부부 사이에 쿨하게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해 준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니?
언제 물어볼까. 커피 마실 때? 잠깐 방심한 사이 훅 질문을 던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하게. 아니면 술 마실 때? 정신이 몽롱해져서 머리 굴릴 새도 없이 대답할 수 있겠지? 그런데 주영인 뭐라고 말할까. 의외로 가볍게 “어, 좋아. 멋진 사람이야. 근데 그걸로 끝. 내가 그 사람이랑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 괜히 심각하게 생각한 내가 우스워지는 꼴이 된다.
“뭐야,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내가? 내가 그 사람이랑 뭘 하겠다고.” 그럼 그냥 재빨리 사과하지 뭐. 아, 미안. 난 또 혹시나 그냥. 그래, 네가 그럴 리가 없지. 네가 설마.. 알지, 나도. 넌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근데 노파심에서. 네가 하도 멍하니 있고, 자꾸 어디다 정신을 뺏긴 것 같길래. 아니면 됐어, 정말 다행이야. 하고 말면 된다. 나의 오해로 친구 사이에 금이 살짝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니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내가 먼저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어떻게 알았어? 티 나? 나 이상해?”라고 말하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뚝 떨어뜨리면 난감해진다. 확인절차로 발생한 뒷일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걸까봐 사실 좀 겁도 난다. 주영이의 감정이 내 추측과 맞아떨어지고, 그 감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깊을까봐.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 도저히 안 돼. 나 어떡해. 어떡해야 돼?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오빠한테 말해야 할까?” 라고 말하면, 어떻게 대꾸를 해줘야 할까.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질문을 듣지 않으면 되고. 그럼... 나도 아예 질문을 하지 말까. 그냥 덮을까, 조용히?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먼저 알게 되면? 쿨한 부부가 불륜과 이혼 앞에서도 쿨할 수 있을까? 그러기 전에 먼저 주영이의 남편에게 말을 해야 할까? 지금 아내의 감정이 아슬아슬한 상태니까, 한 번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오지랖인가? 그래도 더 심각한 상황이 오기 전에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닐까? 아니면 두루뭉술하게 부부 사이는 좋냐고 물어볼까? 여전히 신혼 같냐고. 눈치가 빠르다면 알아차릴 테고, 주영이처럼 눈치가 없다면 “네, 아주 좋아요.”하고 말테지. 아, 어쩌면 좋지. 이럴 땐 차라리 남편에게 딴 여자가 생겼을 경우가 좀 더 편하겠다. 그럼 주영이에게 말을 해야 하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냥 모른 척 눈을 감아야 하나. 깜박 속고 있을 주영이가 불쌍하니 말을 해야겠지? 아, 머리가 점점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