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이는 꿋꿋이 꼬치를 준비했다. 그렇게 말렸건만. 닭다리살과 대파, 파프리카, 통마늘을 번갈아 끼우고 마트에서 사 온 데리야끼 소스를 골고루 발라, 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거기에 고추냉이를 넣은 간장을 곁들일 거라고 했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베이컨 버섯말이도 준비했다. 좀 느끼해 보이지만, 뭐 지금 안주거리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또 4캔에 만원하는 수입맥주도 8캔이나 준비했다. 많이도 샀다. 아주 확 취하게 만든 후에 고백하려고 하나. 자기가 말해놓고 다음날 후회할 지도 모르니, 혹여나 남편이 기억 못하게. 하긴 취할 정도로 마시려면 혼자 8캔을 마셔도 부족하지. 듣기로 주영의 남편은 술이 꽤 센 편이다. 많이 마셔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그런 남자에게 나 사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어, 라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술이 취해도 흐트러지지 않는 남자는 평소엔 더 완벽한 법이다. 자기 컨트롤이 잘 되고 표정관리도 아주 잘 한다. 하지만 이런 폭탄선언에도 무너지지 않을까? 자존심이 강해 심장이 조각나도 얼굴은 꿋꿋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견딜까. 아니면 한 번에 확 폭발해 야수로 변해버리는 걸까. 주영이의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난 호기심에서 이런 게 아니다. 약간 궁금할 뿐이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선다. 내 친구 주영이와 그의 남편이 오래도록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스에서 만난 남자로 인해 그들의 완벽한 평화가 깨질까봐 걱정된다. 어쨌든 내 걱정과 무관하게 주영이의 남편은 퇴근 후 바로 집으로 왔고, 주영이가 차려놓은 술상에 완전 감동했다. 곧 캔맥주를 따서 한 번 가볍게 부딪히고는 꼬치를 집어 하나씩 빼먹었다. “오, 맛있어, 맛있어”를 연발했으며 “이야, 와우” 같은 감탄사도 잊지 않았다. 식탁에 빈 캔맥주가 하나씩 놓여갔고, 살짝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무슨 말을 해도 시작은 기분좋게 들을 수 있는 그 상태가 된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는데, 그만 어처구니없게도 난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주영이와 남편이었다. 어젯밤 주영이가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했을까. 뭐라고 했을까. 남편은 또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제 얘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듣고 잤어야 했는데,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깜박 자버렸다. 아, 이런. 예측해보건대 아마 주영인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남편의 기분을 살피며, 살짝 한마디 한마디. 주영이의 얘기를 다 들은 남편은 살짝 오르던 취기가 냉기로 바뀌며 정신이 확 또렷해졌을 것이다. 물건을 던지거나 욕을 하는 몰상식한 짓이 오가진 않았겠지만, 둘은 아마 크게 싸웠을 거다. 눈에선 불꽃이 튀고, 핏대가 서고, 혈압이 상승하고. 짙은 어둠과 바람마저 잠든 조용한 새벽, 그들이 내뱉는 차가운 말들만이 공기를 산산이 쪼개며 바닥에 하나 둘 떨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