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를 맞추다 4

by 허니모카

4.


지금은 사회면으로 다큐를 찍고 있지만, 처음엔 자연 쪽에서 시작했다. 동물의 삶이 사람과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흥미로웠다. 몇 년 자연 쪽으로 촬영을 하다 제작사가 영역을 사회면까지 넓혔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사회면으로 가게 됐다.

지상파 방송에서 환경 특집 3부작을 요청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찍어야 할 <쓰레기와 신재생에너지>다. 오늘은 그것에 관한 회의가 잡힌 날이었다. 방송국 앞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대거 몰려있었다. 이런 날은 대개 아이돌들이 방송국에 총출동하는 음악 방송하는 날인데, 하필 그 날이 오늘인가 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어도 불특정 다수는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살짝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에이 뭐 별 일이야 있겠어.


당당히 주차를 하고, 로비에서 방문증을 받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지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내려오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기다리다 지쳐, 그냥 계단으로 오르는 문을 열었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계단이 편했다. 탁탁. 내 발소리만 울리는 계단을 아무 생각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3층까지 오르는 동안 사람은 보지 못했다. 잠시 밖을 내다보니, 여전히 소란스러워 보이는 여자아이들의 무리가 있었다. 다리도 아프지 않은 것인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지 살짝 안쓰러웠다. 공감이 아닌 답답함이 느껴진 순간, 꼰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시선을 돌리고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다시 생각 없이 올라 4층에서 5층으로 가려는 순간, 누군가 위층에서 후다닥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

상대방도 놀랐다는 감탄사를 뱉어놓고,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최건우였다.

“오랜만이야.”

반가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하지만 난 내 영역 안에 들어온 적수를 보듯 경계심이 일었다. 방송국이 누구의 영역에 더 가까운지 따져보지도 않고, 심지어 계단에 내 냄새를 뿌리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여긴 웬일이야? 무슨 일로 왔어?”

영역을 침범한 적에겐 맹렬한 공격을 해야 하지만, 난 인간인지라 무관심으로 응했다. 대답 없이 슥 지나쳐 가려는데, 최건우가 황급히 내 팔을 잡았다. 생각지 못한 스킨십에 놀라 표정을 한껏 구기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나 좀 도와줘.”

“뭐?!”

손을 뿌리치고 물었다. 무슨 부탁이냐는 물음이기보다 부탁이 지금 할 소리야? 에 가까운, 어이없다는 표현의 물음이었다. 도와달라는 부탁은 지인이든 타인이든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전 부인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그것도 우연히 지나치다 만난 경우엔 더욱 더.


“나 오늘 앨범 내고 첫방인데, 그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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