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를 맞추다 5

by 허니모카

5.


그거. 그렇게만 말해도 뭔지 알 것 같았다. 최건우의 방송 징크스. 어느 순간부터 최건우가 방송을 하는 날엔 늘 왼손에 차는 팔찌가 있다. 어쩌다 한 번 그걸 빼놓고 생방송을 하던 날, 가사를 잊어버린 후부터 그 팔찌는 최건우에게 징크스가 되어버렸다.

“차에 있어, 좀 갖다 주라. 응?”


순간 우리가 헤어진 지 3년 된 사이가 아니라, 어제 만나고 헤어진 연인인가 싶은 착각이 들만큼 자연스럽고 친근하며 애절한 말투였다. 하지만 깜빡 속아 넘어가기엔 내가 모르는 타인의 시선까지 받아가며 3년간 혼자 켜켜이 쌓아온 세월이 너무 컸다.

“싫어.”

냉정히 돌아서려는 발길을 그의 목소리가 부여잡았다.

“제발. 부탁이야.”

하. 가수가 아니라 배우를 하지 그랬니.

“태우씨 있잖아. 어디 갔어?”


매니저의 행방을 묻는 건, 그에게 이미 반은 허락했단 뜻으로 들렸을 것이다. 매니저가 없으면 니 일을 봐주겠다, 뭐 그런 의도가 다분하니까. 3년 전 매니저가 여전히 최건우 옆에서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제까지도 옆에 붙어있었던 양 물었다.

“형 잠깐 피디 만나러 갔어. 전화해도 안 받아.”

저리 대답하는 걸 보니, 여전히 저 까칠한 성격을 맞춰가며 일하고 있나 보다. 쯧쯧.

“그럼 오면 갖다 달라고 해. 피디 만나러 갔으면 금방 오겠네.”

“진정이 안돼. 없는 걸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없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단 말이야.”


하. 첫 방송을 어찌하든 관심 없고, 니 불안이 나랑 뭔 상관이겠냐마는 이 계단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냅다 뿌리치고,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비상계단을 나가 혼자 쏙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몸은 벗어나도 마음은 찝찝할 것이다. 게다가 생방송이라도 망치는 날엔, 더더욱.


“직접 가면 되잖아.”

“밖에 애들 많던데.”

“쟤들은 최건우 보러 온 거 아니고, 아이돌 보러 온 거야. 몰라?”

“알아. 기자들도 올 거야. 하필 기사도.”

자신도 민망한지 말하다 급하게 뚝 끊고 만다. 그래, 13살 어린 애랑 연애하는 게 헤어진 전 부인에게 자랑은 아니겠지. 그것도 부탁하는 이 시점에. 맘 같아선 “그 애한테 부탁하지 그래.”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유치해서 참았다. 그저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사람은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걸까. 갑자기 ‘그래, 위자료도 많이 받았는데, 그거 하나 못 해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어딨어?”

그 한 마디에 최건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고 하면 좀 오버지만, 그에 못지않은 안도감을 얼굴 전면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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