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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Feb 23. 2022

혼자 쓰는 일기

부부


부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운동 삼아 한 시간이 걸리는 집에 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며칠간 싸늘했던 날씨와는 다르게 두꺼운 오리털 점퍼 속으로 촉촉이 땀이 맺히는 날씨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 가는 두 사람의 모습 때문이다. 갈색의 머리카락 아래쪽이 하얀색으로 바란 짧은 머리의 할머니는 거의 구십 도 방향으로 등이 굽어 있었다. 살금살금 내닫는 한 발을 따라오는 다른 발도 조금씩 땅에 끌리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사십오도 정도 굽은 등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팔을 잡고 느릿느릿 걷고 있다. 두 분의 얼굴은 고통과 체념으로 이 글러진 듯했다. 겨우 발걸음을 떼는 할머니를 데리고 할아버지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인지 집으로 가는 길인지 궁금했지만 가서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소설가의 산문집을 읽었다. (김훈『밥벌이의 지겨움』「남자도 오래 살고 싶다」) 작가는 ‘마누라보다 오래 살아서, 내 마누라가 죽을 때 마누라를 이 세상의 가장자리까지 배웅해 주고 싶다.’고 했다. 또 40대와 50대의 남자들이 아내들보다 먼저 죽은 것이 보편적인 사회현상이라고 까지 이야기했다. 구석기시대 이후 수렵과 약탈로부터 그의 자식과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모순과 비리, 술과 과로의 억눌림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아내들보다 빨리 죽는다는 이야기였다. 사회를 지배하는 생활이 남자들의 특권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남자로 살아가는 일이 힘든 역할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사람의 삶이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누리고 싶은 것 누리고 가지고 싶은 것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슬픔과 아픔을 누르고 자신의 역할을 초과 달성하기를 바라면서 산다. 그 사이 꿈과 소망이라는 이름으로 욕심과 욕망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이웃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것이 삶이다. 그 삶에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가 있다.  


희망이라면, 작은 꿈이라고 욕심을 부려 말한다면,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오랜 기간 재미있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가 가지는 꿈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흔히 하는 농담으로 9988234라는 말이 있다. 99살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사망하고 싶다는 말이다. 웃자고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속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다.


어느 해, 평창 메밀꽃 축제에 간 일이 있었다. 평창의 들에서 이효석 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언덕 같은 낮은 산을 올라가야 한다. 한동안 허리디스크로 걸음 걷기가 불편해서 치료를 받던 뒤였다. 가파른 비탈길 올라가기를 힘들어하는 내 앞에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보다는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남자는 걸음걸이가 불편한 여자를 붙잡고 걷고 있었다. 위험한 비탈길을 내려가는 두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고 섰던 남편은 내게, 당신도 저렇게 되지 않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몸 관리하라고 말했다.


통계적으로는 남편들의 건강이 더 문제인 듯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내 건강이 더 문제다. 큰 수술을 받고 수시로 병원에서 약을 받아다 먹어야 하는 사람은 나다. 타고난 약골도 아닌 듯이 두루뭉술한 몸매지만 늘 어딘가를 아파하며 살아왔다. 내 마음은 건강한 삶을 원하지만 약봉투가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해 결혼기념일 선물 속에는 ‘건강하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메모지가 담겨있었다. 그 메모지의 부탁대로 살고 싶다.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내 아이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싶다. 결코 무리한 욕심이 아니길 바란다. 크게 이룬 탑은 없지만 농촌에서 태어나 작은 소도시에서 이름 없는 아낙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처럼 소박하고 조용한 삶을 오랫동안 살고 싶다. 물론 건강하게 말이다.


건강검진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의사는 나를 관찰대상자로 보고 있다. 검진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병명이 하나씩 생겨나고 먹어야 되는 약들의 숫자가 늘어간다. 이번에도 일주일 후에 결과를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 조직 검사를 했던 것이다. 건강하고 싶은 소망은 누가 들어줄 것인가.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미안하다.


병원에서 나와 좋은 날씨를 핑계로, 운동을 핑계로 걷던 중에 노부부 걸음걸이를 바라보며 나는 서 있다. 할머니를 부축하는 할아버지도 건강한 모습은 아니었다. 키운 자식들을 세알 속으로 내 보내고 둘이 남아 함께 늙어 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노부부. 내 눈에는 곧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로운 모습이지만 함께 의지하기에 그나마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겼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위를 돌아보면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다. 알지도 못하는 노부부지만 함께 노년을 보내며 할머니를 부축하는 할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있어 든든하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있어 위로받을 것이다. 남자의 책임을 강요했던 지난 시대의 삶에서 잘 견디고 살아오신 이름도 모르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동하는 마음은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건강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제 건강을 걱정해야 되는 시간이 되고 보니 노후에 나는 혼자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나를 부축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 역시 남편의 노년을 부축해 주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더 많이 나이 들어 힘들어할 때 저 할아버지처럼 나를 부축해 줄 남편을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편안한 남편의 노후를 위해서는 나 역시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위한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남편과 나를 위한 저녁식단은 무엇이 좋을까를 생각하며 시장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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