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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Jul 29. 2023

평범한 일상이 좋다


삶에 큰 구덩이가 있다면 일상은 그 구덩이 가장자리를 조심조심 걷는 일이다. 식구중 누구 한 사람이 실직을 하거나 중병에 걸리면 우리는 바로 이 구덩이로 추락하게 된다.
아무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란,
실은 엄청난 기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p231)
                                              <<제주, 소요>> 비하인드.  미래시간. 2016



제주에서. ㅋㅋ~ 어딘지 모르겠네


지난 블러그를  뒤적이다가 눈에 뜨인 문장이다.

삶이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연속해서 헤쳐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나도 몰래 살그머니, 또는 갑자기 내 자리로 들어와 일상을 뒤 엎어 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5년 전, 나는 덜컥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 모르지만 병을 받아들고도 그날그날을 웃으면서 지냈다는 것이다. 행여 이웃의 누군가가 걱정할까봐  '괜찮아'를 남발하면서 지냈다. 어쩜 그렇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갑자기 닥아온 일에 어리둥절해서  눈물 조차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머릿카락 한 올 없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내가 왜 이런 모습이지 낯설어 하곤 했다. 모자를 쓰고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서 카카오스토리에 올리곤 했다.  " 나, 잘 지내고 있어."  이런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5년이 지나는 동안 잘 지낸 것 만은 아니다. 계속되는 약 부작용으로 다른 약을 먹어야했고 처음과 달리 마음은 약해져 갔다. 날이 지나갈수록 치료중에 있었던 후유증에서 벗어나야 했는데 내 경우는 이 년이 지난  삼 년으로 가면서부터는 다른 여러문제가 순차적으로 찾아오면서 지치곤 했다.

주부이자 아내이고 엄마인 내가 중병에 걸리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일이다.  남편이 주방에 들어가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이들은 수시로 집에 내려와 나의 동정을 살피고 돌아가곤 했다. 친정식구들은 근심어린 표정과 목소리로 방문하고 전화 걸고 음식을 만들어 우리 집 식탁을 걱정하곤했다.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하고 싶은 일을 접어야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아무일 없는 평범한 일상이란,
실은 엄청난 기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제주, 소요>>

그렇게 5년이 지나갔다. 지난 주 정기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여행을 떠났다. 다 잊어버리고 그저 며칠 재미나게 지내보자는 생각으로 떠났다. 검진은 항상 긴장을 부르고 우울과 불안을 몰고 온다. 5년 사이 검진 결과에서 재검을 받고 다시 조직검사를 했던 여러 번의 기억이 그런 불안을 몰고 오는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들으러 갔다. 약간의  걱정이 담기긴 했지만 당장 어떤 문제가 보이는 건 아니란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보자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조심스런 생활을 계속 이어가야 한단다.

그래, 건강이라건 평생 신경쓰면서 살아야하는 거지 뭐. 나만 조심해야 하나? 누구나 다 조심하면서 사는 거지. (그저, 웃지요~~^^)

먹던 약은 끊기로 했다. 이건 내 결정이다. 의사 선생님은 계속 먹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강력히는 아니고 그게 더 안전하다고 했다. 나는 약의 부작용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러다가 다른 곳까지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싶기 때문이다. 부작용때문에 먹어야 하는 약에서 벗어나고 싶다.  처음 치료때 5년만 먹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지난 5년 동안 안 놀고 살은 건 아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참견하고 즐기려 노력하면서 살았지만 몸은 무척 피곤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용감했던 것 같다. 강의 듣고, 동아리 쫓아 다니고, 봉사 나가고, 여행 다니고, 지난 해 까지는 등산도 다니고....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 배려해 주고 아껴준 덕분이기는 하다. 모두에게 고맙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욕망은 있지만  지나치거나 바르지 못한 욕망은 버리고 살아야 한다.  꿈꾸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목표는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평범한 하루가 모여 한 해가 되고, 평범한 한 해가 모여 한 생애가 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산다. 큰 거 바라지 않는다.

오늘 같은 평범한 나날이 오랫동안 계속 되길 바란다.

                                                                            (2018)



지난 일기장을 보다가 발견한 5년전 오늘의 일기다.


그리고 5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나는 잘 지내고 있기는하지만 변함없이 건강은 나를 달달볶는다.


오늘, 지인들과 모임이 있었다.

나이들어가면서 대화는 건강으로 이어진다.

병원 나들이 이야기가 계속 된다.


나에게 말한다.

"늘 건강해 보여. 여행도 잘 다니고, 건강하니 손녀딸도 봐 주는 거지."


그저 웃지요.

나는 늘 건강에 발목잡혀 허우적 거리고 있다.

이번 달에도 매주 병원에 갔다. 견디다가  영양제도 맞았고 약발로 버티는데.

그걸 누구에게 어떻게 말하나? 말해도 그들은 그저 듣고 넘어간다. 그리고 들을 걸 잊

어버린다. 언제 아팠냐고 한다. 누구나 내 손톱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지.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휴식이 필요해서.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늘 만큼의 힘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일도 나쁘지 않다.

휴양림 길을 산책했다.

초록의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오늘, 이런 평범한 일상이 계속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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