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미 Aug 22. 2023

아들과의 데이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바깥풍경이 환히 내보이는  9층 건물 카페에  아들과  함께 앉았다. 앞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가 놓였다. 새삼스레 달콤한 커피를 시켜놓고 보니 카푸치노를 마셔보는 게 얼마만인가.  아들은 아마도 엄마는 카푸치노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원두커피를   마시지만 요즈음 커피가 받지 않는다. 아들과  함께라서 오랜만에 커피를 주문하면서 예전에 자주 마시던 카푸치노를 주문해 봤다.


-  아들, 엄마 좀 태워다 줄래?
운전 못하는 엄마의 이런 부탁을 들어준 아들에게 차도 한 잔 마시자고 했다. 아들과 단 둘이 카페에서 앉은 건 아마도 처음인 거 같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집을 떠났고, 우리 모자는 다정한 타입이 아니라 이런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커피잔을 놓고 커피이야기를 나눈다.
- 이탈리아에는 에스프레소를 많이 마셔요.
스타벅스가 성공하지 못한 곳이에요.
-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마시는 미국인을 위해  만들어진 커피죠.
- 예전에는 커피가루에 물을 타 마셨는데 그걸 싫어하던 남편을 위해 아내가 아들 노트  종이에 커피를  걸러서  핸드드립이 시작되었어요. 뭐든 시작은 다 부족하지요.

ㅋㅋ~
아들이 들려주는 커피이야기도 재미나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겨우 에티오피아 목동 이야기뿐이다.
그 목동 이름이 칼디란다.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혀가 언젠가부터 원두커피로 옮겨졌다.
객지 생활을 하다가 이제 집으로 들어온 아들이 더치커피를 만드는 엄마를 신기해한다. 그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평가에 자신이 없는 나는 맛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아들도 마시기는 하지만 맛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독일식 카페(남편이 독일사람이란다)에  앉아서 아들에게 물었다.
- 커피 맛이 어떠니?
- 좋아요.

나도 좋다.
왜냐하면, 아들과의 데이 트니까. (2017)


***************

***************


지난 어느 날의 일기장에서 가져왔다.

이제는 결혼한 아들과 둘이서 데이트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들은 지금도 며느리와 함께 커피를 자주 가져다준다.


요즈음 카페병에 걸린 것 같다.

남편과 자주 카페가 앉아 있다. 별 말도 없이.

카페들이 대형화되고 경치 좋은 곳이면 카페가 자리 잡고 있기에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쉬어가기 안성맞춤인 곳이 카페다.

그런 이유로 자주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가다가 눈길을 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 차를 마시고 잠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있다가 목적지로 가곤 한다.


세월이 흘러 나이 들고, 세상은 변했다.

세상의 속도보다는 훨씬 늦지만 세상의 변화를 천천하 따라가면서 생각도 변해가는 것 같다.

비싼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거란 생각은 젊은 시절엔 하지 못했던 생각이다.

다방에서 만나 연애하던 시절을 지나 결혼 후에는 집에서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마시고, 장거리 여행 때도 커피 원가를 생각하며 집에서 준비한 커피를 들고 다녔었다.

휴게소에 앉아 집에서 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참 좋았다.

그 좋은 시간이 어쩌다 슬그머니 휴게소 커피를 사 먹게 됐다.

휴게소에서 마시는 커피도 맛있어서  휴게소를 그냥 지나치면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기까지 했다.

변화는 이제, 국도로 자리를 옮겨 소문난 대형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휴식을 핑계로.


하루에 한 잔 커피를 마신다.

카페를 좋아하니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하루 한잔이 내 정량이다.

집에 있으면 오전에 한 잔.

외출이 계획되어 있으면 오전에 참고 참다가 외출하고 한 잔.


카페 커피가 서민의 가정주부에게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늘 집에서 살림만 하고 살며 친구들도 만나지 않는 나에게는 나를 위한 지출이고 이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서너 번.

한 잔의 커피를 놓고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보내는 작은 사치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 내리는 날,   경기 의정부카페 오크힐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일상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