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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Nov 27. 2019

동백꽃 필 무렵, 지영아 어깨 펴.

동백이와 지영이는 불쌍하지 않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보기 전부터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나 대성통곡하면 어떡해?'


소설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 쉬느라 눈물 따위 흘러나올 겨를이 없던 반면, 영화는 예고편과 포스터만 보고도 벌써 겁이 났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

그렇다. 이 마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여보, 하고 싶은 거 다해.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쯤 되었을까. 남편에게 한자 자격증을 따겠다고 선언했다. 내뜻대로 아무것도 되지 않고 매일이 새로운 육아에 '앗 뜨거워' 하더 있던 터라, 내 의지로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 그게 나에게 필요했고 한자 자격증은 만만하면서도 일어 공부를 하고 있던 나에게 좋은 명분이 되었다. 뭐, 한자 세대가 아니라는 핑계로 원체 한자를 못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한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외워야 하는 한자 중에 10프로나 알고 있을까. 무지한 내 한자 수준 덕분에 나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해야 했다. 문제는 이제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라는 거였다.


모유수유 중인 아가는 1시간 반마다 젖을 찾았고 잠은 길어야 2시간씩 잘까 했다.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상황도 분통 터지는데, 이깟 한자 공부도 마음껏 못하는 현실에 짜증이 치밀어올라 괜히 눈물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사실 눈물이 난 이유는 한자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출산 후 첫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두려움이었다. 혼자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복직 후 회사 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시작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그럼에도 가고 싶은 그 길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두려움으로 변이 한 것이었다.


시험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예민했고 남편에게 우울감을 여과 없이 표출했다. 영화에서 난 괜찮다고 말하는 지영이의 배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출구 없는 불안감에 허덕이는 나를 발견한 걸까,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여보, 여보 하고 싶은 것 다 해."


마치 한도 무제한 카드를 건네받은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이 든든하고 설레었달까. 구체적인 계획이라던가 절절한 도움의 의지라던가 그 어떤 말도 보충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쯤이면 충분했다.



그는 약 두 달가량을 퇴근하고 육아를 했다. 육아는 같이 하는 거라는 걸 알지만 당연한 거라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도 처음 닥친 이 상황에서 용을 쓰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결국 난 남들은 2주면 한 번에 딴다는 자격증을 2달 만에 재시험을 보고 땄다. 단연코 그의 지지 덕분이었다.


10개월이 지난 후,

얼마 전 영화를 보고 그에게 물었다.



"오빠, 전에 나한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잖아.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눈이 동그래 지더니, 솔직한 이 남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인다.

"음… 몰라?"


기억이 안 나는 듯했다. 참, 쓸데없이 솔직한 사람. 그래서 더 좋았다. 굳이 기억에 남길 만하지 않은 '밥 먹었어?'처럼 일상 속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 여기고 감사하면 그뿐인 거다.





# 넌 복직해도 주눅 들지 마.


얼마 전 친척 언니가 회사를 그만뒀다. 업계 불황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거다. 황당한 건 권고사직을 당한 이유가 '맞벌이 아줌마'라서란다. 꽤나 보수적인 그 업계는 아직도 IMF 때의 기준이 적용되는 듯했다.

퇴사를 앞두고 언니가 가장 후회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의 태도라 했다. 요청을 요청이라 하지 못하고 만사 저자세로 생활해온 쭈구리 오피스 라이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언니는 대뜸 나에게 말했다.


"르넷, 너는 복직해도 주눅 들지 마."

언니의 말에 멍하니 카톡창을 바라봤다. 난 이미 쭈구리 인걸. 복직은커녕 어딜 가든 요즘은 쭈구리 모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화센터를 가도, 카페를 가도, 공원을 가도, 식당에 가도, 휴게소에 가도. 딸아이와 함께한 뒤 세상은 어딜 가나 우리를 예단하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10분 정도 옆 테이블에서 지켜보고는 아이가 순하다며 설익은 칭찬을 건네는 할머니, 개월 수와 몸무게를 묻더니 분유를 먹었나 보다며 재단하는 문화센터 엄마, 옆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자식 흉보느라 정신없는 어르신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떡 뻥을 재촉하는 딸아이의 '앵' 소리에 눈빛을 발사하는 카공족까지. 마치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느낌을 견디며 딸아이와의 외출을 결심한다.

 

편견은 별게 아니다.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판단하고 상대의 마음은 고려하지 않는 처사, 그저 그뿐이다. 물론 나도 편견 덩어리다. 식당에 앉자마자 아이에게 숟가락보다 휴대폰을 먼저 쥐어주는 엄마를 보면 게으른 엄마일 것 같고 아내는 아기띠를 하고 가는데 앞서 걸어가는 남편을 보면 가부장적일 것 같다고 예단한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는다. 영화 속 지영이가 말한 것처럼 난 그들을 모르기에 나의 생각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어떠한 권리도 없으니까.


웃긴 건 지영이와 나는 그들과 다르게 끊임없이 평가받는다는 거다. 그들은 그럴 권리가 없음에도. 집 밖에 나오면 평가를 피할 수 없기에 그저 예의 바른 을로 길들여져 가는 요즘을 지영이와 나는 견뎌낼 뿐이다.

복직을 두 달 여 앞둔 지금 복직 후 나를 상상한다. 상상 속의 나는 항상 발을 동동 구르며 바쁘다 못해 촉박한 일상 속에 있다. 그리고 잔뜩 움츠려져 있는 그 어깨, 그 어깨가 어디서 많이 본듯해 지영이를 보며 가슴이 저릿했던 것 같다.






# 지영이에게 동백꽃 필 무렵이 오기를.


동백꽃 필 무렵. 오랜만에 푹 빠진 드라마다. 싱글맘 동백이가 깡촌 마을 순경 총각과 사랑에 빠지며 자신다워지는 이야기. 몇 년 전만 해도 싱글맘은 신파의 주인공이었는데, 코믹하고 밝은 드라마로도 풀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신기하다. 극 중 동백이는 회를 거듭하며 어깨를 움츠린 쭈구리에서 할 말은 하는 당찬 여성으로 성장한다. 말 그대로 동백이가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꽃을 피어내는 무렵의 이야기인 셈이다.



난 이 드라마가 인기인 이유를 지난주에야 깨달았다. 나와 지영이의 세상에는 동백이도 용식이도 없어서다.

용식이처럼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대는 남자도, 한 남자의 사랑이 변화의 동력으로 충분한 여자도 현실에 있을까. 있을 법 하지만 없는 이야기, 드라마 다운 드라마라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나 보다.

 

영화 속 지영이는 사랑하는 남편도 헌신적인 엄마도 이끌어주는 상사도 있지만 힘들다. 그 누구도 지영의 용기를 북돋아 줄 수는 없다. 가끔씩은 행복한 그녀지만 결국 스스로 들고일어나 카페 내 맘충 발언자에게 따지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뿐인가. 들고일어나도 마음은 좋지 않고 딱히 변하는 건 없으니 이 정도면 그냥 참는 게 나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과정은 다를지언정 지영이에게도 동백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지영이와 함께 어깨 피고 당당히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그런 무렵이 찾아오기를, 이제 끝이 얼마 남지 않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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