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분명 이곳이 맞는데, 회사 간판이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인다. 조급한 마음을 다잡으려 아직 남은 출근시간을 헤아려본다. 구글 맵도 먹통이고 주변 사람들도 건물을 모른단다. 하릴없이 골목을 헤매고 헤매다 다시 아까 마주했던 막다른 벽 앞이다. 그대로 눈물이 났다.
'지이이이잉'
진동이 울린다. 남편의 알람이 울리는 소리에 꿈에서 깼다. 내가 맞춰놓은 7시 알람까지는 30분이 남은 시각. 그대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15개월. 내가 회사를 떠나온 시간이다. 십 년 넘게 소문만 무성했던 사옥 이전을 마침 휴직 기간에 한 덕분일까. 꿈에서조차 눈물이 찔끔 나는 불안감을 느끼고 화들짝 깨다니. 악몽이 데자뷔가 되지 않도록 속도를 내 출근 준비를 했다. 복직 전날 이런 해괴망측한 꿈을 꾸다니.아무래도 오랜만의 출근이 긴장되긴 했나보다.'끊임없이 갈팡질팡할 앞으로의 내 미래를 보여주는 예지몽인건가'하는 생각에 서둘러 출근준비를 마쳤다.
다행인 걸까. 딸아이는 곤히 잠들어 출근 첫날 눈물의 이별은 없었다. 그렇게 출근을 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컴퓨터와 자리 세팅을 하고 일을 시작하는데 내 복직을 반가워해주는 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공통적으로 물었다.
Someone : 자리가 여기에요?
Me : 네, 오늘만 여기 앉기로 했어요.
팀 단위로 자리 배치가 되어있지만 나는 옆 파티션에 인턴 정도가 앉을법한 자리에 앉게 됐다. 마침 다음날 후배와 상사가 퇴사를 할 예정이라 하루만 앉는 임시 자리였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상황을 모르는 주변인들은 꽤나 의아한 듯했다. 마치 좌천이라도 된 것 마냥.
Someone : 애는요?
Me : 어머니가 봐주세요.
Someone : 보고 싶지 않아요?
Me : 생각보다 괜찮네요
누가 돌봐주냐는 질문이다. 친정어머니가 봐주신다고 대충 얼 무어 부린다. 오전은 친정어머니가 봐주시고 오후에는 시어머님이 봐주신다는 둥, 구구절절 말해봤자 '애가 힘들겠다'는 둥, '불안하지 않냐'는 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늘어질 것이다.
아이가 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짧은 대답과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되려 의심을 부추길 것 같고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매정한 엄마가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보고 싶다고 한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Someone : 어때요, 낯설죠?
Me : 조금 그렇네요.
이상하지만 생각보다 낯설지는 않았다. 복직 첫날부터 클리핑 키워드를 세팅하고 고객사 담당자와 업무 스케줄을 조율했지만 스스로도 의아하게 떨린다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7년 여간 했던 일이라 그런 걸까. 조금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낯설다고 답했다. 오늘 하루 종일 '이건 어떻게 하느냐" "저건 뭐냐" 하며 폭풍 질문을 쏟아낼 운명이니.
"지금까지 이런 맘은 없었다. 수원 왕갈비 통닭이 될 거다 "
복작복작한 복직 후 첫 출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지하철, 동료들의 질문을 되새겨봤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날을 세웠다. 스스로가 만든 괜한 긴장감 때문일까. 아마도 얼마 전 접한 육아휴직 후 복직한 동료에 대한 이중잣대와 야박한 평가들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을지도.
작년에 복직한 언니도, 내가 좋아라 하는 선배도 입을 모아 말했다. 아이를 낳고 돌아왔을 뿐인데 기를 쓰고 자신을 두 가지중 하나로 분류하려는 것 같아 체력보다 마음이 후 달렸다고.
'잠재적 퇴사자 혹은 매정한 엄마'
자신들을 언젠가 '아이 핑계'로 일에 소홀할 인력 혹은 본능인 모성을 저버리고 커리어를 쫓는 욕망 덩어리. 그 두 가지 중 하나의 분류로 밀어놓고 예단하려 혈안이 된 것 같다는 거였다. 싱글인 동료가 칼퇴근을 하면 워라밸을 챙기나 보다 하면서 워킹맘의 칼퇴근에는 잠시 촉촉한 눈빛을 보내다 이내 시선을 거두는 풍경이 싫다 했다.
우리 회사는 워킹맘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곳은 아닌 편이다. 꽤 높은 복직률과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하는 것 같아 보이니까. 물론 지금 막 복직을 시작한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니다. 임신과 출산도 텍스트가 아닌 경험을 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모성 강한 잠재적 퇴사자와 능력 있는 매정한 엄마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포지셔닝될까. 잠재적 퇴사자라기에 나는 복직과 동시에 이전보다 일찍 출근하고 퇴근 후 아이가 잠든 후 자체 야근을 하고 있고, 매정한 엄마라기에는 그래도 딸아이를 재우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사람인데.
엄마가 돼도 진급을 해도 뭐 하나 딱 분명해지는 게 없다. 내 언니들과 선배들을 울렸던 그들처럼 좀 더 날이 잘 든 잣대가 갖고 싶다며 괜히 쿵쿵쿵 발걸음을 옮긴다.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헐레벌떡 엘리베이터를 탄다. 1초라도 빨리 가겠다고 탑승과 동시에 닫힘 버튼을 마구 누르는데 기분 좋아지는 치킨 냄새가 풍겼다.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치킨 냄새에 갑작스레 대사 하나가 생각났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진정시키며 든 생각. 치킨도 후라이드냐 통닭이냐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시대인데, 나도 이제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사람들을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그래, 나는 수원왕갈비 통닭이 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