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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Jan 27. 2020

왕년의 저성과자가 신입사원에게 전하는 늦은 고백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다소 추워 보이는 코트, 유관순 열사를 오마주 한 정장. 신입사원 룩을 완성시키는 사원증까지 꼼꼼히 챙겨낸 그들이 이른 아침 사무실을 채운다. 바로, 공채 신입사원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는 심정을 우렁찬 출근인사로 숨긴 채 자리에 앉는 그들의 모습이 여지없이 나를 충무로로 데려다 놓았다.



#아픈 건 맞는 소리다. 싫은 소리가 아니라.


쌀쌀한 날씨가 물러가고 푸른 새싹들이 키를 키우던 봄날의 충무로, 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마치 남자에게 차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다만, 3개월의 수습생활 종료와 정직원 계약을 이야기 중이었다. 중대한 이야기 중,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흘렸던 건 상사의 말 때문이었다.



 ‘르넷,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했으면 좋겠어.’


왜 울었던 걸까. 싫은 소리를 들어서 였을까? 아니다. 맞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스물다섯의 첫 인턴생활. 교수님의 추천으로 들어간 콘텐츠 스타트업에서 나는 그 회사의 1호 인턴이자 사원이었다.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맞게 손이 시려 장갑을 끼고 일하는 곳에서 시작해 3개월 만에 꽤나 널찍한 회사로 옮겼고 직원만 여섯 명인 회사로 급성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신입으로 있기에 스타트업은 체계도 권위도 시스템도 부족했다. 직무 혹은 보상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회사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때의 내가 이 업에 대한 어떤 바람도 니즈도 없었기에 그저 불만스러운 부분을 찾아 불만을 키우고 있던 형국이었다.


옛말에 ‘근태를 보면 그 직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거의 매일을 지각 혹은 출근시간에 딱 맞춰 출근했다. 업무 기한은 넘기기 일쑤였고 회사에서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의 코드가 다 나와 다르고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어느 날 회식을 하고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중, 당시의 팀장은 말했다.


"르넷, 출근할 때 그냥 하지 말고 오늘은 무슨 일을 먼저 해야겠다는 식의 업무 밑그림을 하고 와. 일요일에 개그콘서트가 끝나면 주말이 끝났다고 아쉬워만 하지 말고 이번 주에는 무슨 일을 쳐내야 할지 우선순위를 생각해보고."


습관적으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슨 말인가 했다. 아니, 그때는 그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시의 난 회사의 규모를 보고 그렇게까지 내 모든 걸 쏟아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스물다섯의 나는 회사의 비전보다 연봉이 중했던 애송이였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3개월 더 신입 생활을 하다 퇴사했다. 이대로는 나도 회사도 서로 좀먹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흔히 조직 내 저성과자는 자신의 처지를 모른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도망치고 싶고 그러니 또 뒤처지고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되는 식이더라.


그 후 들어간 대기업, 중견기업에서 나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일했다. 지각은 손에 꼽고 자발적 야근을 하더라도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지만 잘하고 싶었다. 스스로가 권위에 약하고 보상에 취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지만 난 그런 수동적인 인력인 셈이었다.


6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을까. 언젠가 옛날의 내 모습 같은 후배에게 시달리다 너덜너덜해진 저녁. 마침내 첫 회사의 상사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낼 용기가 났다.


한참 동안이나 메시지를 다듬고 다듬어 그에게 보낸 장문의 메시지는 결국 미안함이었다. 진심으로 일하는 그를 본의는 아니었지만 기만하고 페를 끼쳤다는 것을 6년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야 보였다. 너무 늦게 보내는 미안함에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런 나에게 그는 쿨하게 얼굴이나 보자며 답했다.


보살임이 분명한 그를 언젠가 만나면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그때 너무 많은 폐를 끼쳤고 지금에서야 당신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라떼충이 신입사원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오늘 아침,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근하는 스스로가 대견할 수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우린 모두 각자의 입장과 상황을 변명삼아 오늘은 살아내는 하루살이입니다.


우리의 이런 노력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하루살이의 날갯짓과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일개미, 하루살이 등의 벌레로 비유 혹은 비하당하기도 하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원증을 매고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감히 나누고 싶은 단어가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저는 저의 입장과 비전을 핑계 삼아 자발적 저성과자로서 사회 초년생을 보냈습니다.

당시는 나름의 이유들로 고달팠지만 돌이켜봤을 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시간이었어요.


제가 그저 버텨냈던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회사의 존폐를 건 중요한 하루들이었고

이것도 회사냐며 메신저로 험담을 했던 그 시간은 누군가 직원의 안위에 발 동동 거리는 시간이었거든요.


우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릴 일들을 만들 수밖에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실수들이 누군가의 진심과 나의 진심을 기만하는 행위는 아닐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잘못과 실수를 해나가고 있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볼 용기와 타인의 진심을 끌어안을 포용이 허락되길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몇 년 후 돌이켜본 오늘에 마음의 부채가 아닌 따뜻한 기억이 더 가득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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