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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넷 Dec 14. 2020

12월, 다이어리를 여는 담대한 용기

서른셋에 워킹맘인데 하고 싶은 게 왜 이리 많은 걸까

지난 4월, 그리고 이번 11월. 한 달 정도 마음이 무거웠다. 대학원에 진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원 진학은 내게 오랜 숙원 사업 같은 거였다. 학부를 졸업할 때부터 어차피 현업의 경험이 중요한 학문인지라 적어도 5년~7년은 일을 하고 다시 대학원을 가겠다는 밑그림이 있었다. 현업 경험을 토대로 본인이 집행한 캠페인의 사례를 토대로 수업을 하는 교수님들이 더없이 멋져 보였기도 했고 학생의 입장에서 얻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벌써 8년 차라니. 휴직기간을 제외해도 7년 차다. 갈 때가 된 거다. 아직도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마음은 같다. 아니 더 커졌다. 다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선명해진 잃을 것과 얻을 것이 마음의 결단을 한없이 유보하고 있는 중이랄까. 마음이 너무 답답했던 언젠가는 표로 내가 고민 중인 것에 대해 pros/cons를 정리하기까지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재미있는 건 이렇게 명확히 각각의 경우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정리했음에도 마음의 결정이 나지 않았다. 초심자의 운으로 고스톱 첫판에는 판돈을 땄지만, 상대의 패를 생각하며 시뮬레이션하다 보니 내 손에 쥐고 있는 어떤 패 하나도 꺼내기 힘든 상황. 사실은 손안에 든 패를 내려놓을 용기가 없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였다.


이득과 손해가 명확하면 결정 내리기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런 내가 당혹스러우면서도 스스로의 우유부단함을 탓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아챘다. 각각의 선택에 따라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에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거였다.


현재 가장 큰 고민인 건 진학 대학원의 형태다. 주간대학원을 갈 것인가 야간 전문대학원을 갈 것인가. 주간대학원을 가게 되면 정량적인 지표들을 잃게 된다. 커리어와 돈이다. 커리어는 2년 늦춰질 것이며 학비로 모아놓은 돈을 써야 하니 내 소득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반면, 야간전문대학원은 삶의 질로 표현되는 정성적 가치를 잃게 된다. 이는 전반적으로 시간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기는 결과인데 퇴근 후 저녁시간이 없어짐에 따라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없고 퇴근 압박으로 인한 업무 저하 가능성이 고려해봄직 하다.


그래, 7년 차 직장인인 서른셋의 워킹맘은 결국 모든 고민의 한 귀퉁이에 '육아'와 '업무'가 박혀있다. 현실을 자각하니 왜 더 빨리 대학원에 다녀오지 않은 건가 후회가 밀려왔다. 가족의 일원이자 조직의 일원인 내 공백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 이건만. 학비만 모아놓으면 갈 수 있다 생각하고 준비한 내가 이토록 창피하고 멍청해 보여 참기 어려웠다.


직장 상사와 함께한 여느 점심시간 중,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왜 더 젊었을 때 대학원을 가지 않았는지 후회된다고. 후회를 뚝뚝 떨어트리며 던진 내 말에 상사는 반정 색 하며 이야기했다.


"지금도 젊어"

힘이 났다. 나를 흘겨보며 건네는 저 말에 왜 괜히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어느 때나 하는 '내가 네 나이만 됐으면...' 하는 식의 농담이라기보다 조급해하지 말고 네 길을 가라는 말인 것 같았다.



#나이 서른셋에 워킹맘인데, 하고 싶은 게 왜 이리 많은 거야


사실 2020년 올해의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그게 무슨 대수냐' 라 할 수 있지만 한 해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계획이었다. 연말에  새 다이어리에 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 년 중 낙이자 벌써 10년을 넘게 해온 습관이다. 한데, 이번에는 다이어리도 사지 않고 거창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휴직 중인 2019년에도 다이어리가 빽빽하게 한 바닥 목표를 세웠는데 말이다.


내 안의 목표를 마주 보기 싫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세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포기할까 봐 였다. 1년간 일을 쉬고 복직한다는 생각에 다시 회사생활에 적응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미션처럼 다가왔다. 해서, 올 한 해 목표는 퇴사하지 않고 복직 후 회사 생활 잘 적응하기였다. 마음의 여유가 그리고 포기를 감당할 여력이 그때의 나에게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3월이 되어서야 얇은 스케쥴러를 하나 사서 1분기 늦은 올 해의 목표를 적어놓았다. 두 바닥을 가득 채운 올해의 목표를 보고 웃음과 한숨이 났다.


"대체 나이 서른셋에 워킹맘인데, 하고 싶은 게 왜 이리 많은 거야?"


스스로의 반문에 육성으로 '헐'이 튀어나왔다. 나이 서른셋에 워킹맘이면 할 수 있는 것을 나도 모르는 새에 규정지어놓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진취적이고(싶으며) 외부 환경을 핑계 대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건만, 이건 어디서 튀어나온 볼멘소리인가.


다시 올해의 목표를 들여다보았다. 벌써부터 이룰 가능성이 높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눈에 보였다. 그대로 두었다. 비록 연말에 동그라미보다 엑스가 더 많은 목표들이라 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어쩌다 생긴지도 모르겠는 규정에 가둬두고 싶지 않았다. 근본 없는 한계에 오기가 생겼다고 할까.


현실에 지쳐 연간 목표를 생각하기도  잠시 묻어놓고 지내다 보니 어느새 12월이다. 코로나 때문에 신나는 송년회도 기대감에 부푼 한 해를 맞이할 신년회도 없겠지만,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기필코 12월이 됐다. 아직도 포기를 받아들이기 두려운 나는 3월에 써놓은 올해의 목표를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번 달 안에는 열어볼 것이다. 내가 성취한 것 그리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담대한 용기. 어쩌면 사실은 그것이 내가 올해 가장 해내고 싶은 것이었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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