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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다시 만나자 런던. 안녕

하지만 아직도 다시 못 가봤다고 한다

by 병 밖을 나온 루기

나의 유럽 여행 첫 번째 도시, 런던. 이곳에 설렘, 긴장, 새로움이 잔뜩 묻어 있다. 이국적인 풍경은 곳곳마다 모두 내게는 새로웠다. 어쩌자고 이 먼 곳에 혼자 온 건지 후회와 긴장으로 여행이 시작된 곳.


런던+생각

내 앞에서 먼저 문을 열고 나간 사람이 항상 문을 잡아준다. 이래서 신사의 나라라고 하나보다.

영국인이 게르만족이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키 크고 잘생겼을까.

지하철이 'subway'가 아니라 'underground'이다

'take out'이라 말하지 않고'take away'라고 한다. 뭔가 가지고 가버려라고 말하는 듯하다.

탄산수를 생수로 알고 잘못 사서 한 모금 마시고 버린 적이 있다. -지금은 탄산수도 잘 마신다.


런던에서 내가 머문 유스 호스텔은 공용 샤워장을 이용해야 했다. 1인 샤워장의 문 밖은 바로 복도였다. 저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혹시 열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습기로 가득한 좁은 샤워장에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닭싸움 다리를 하고서 폴짝이며 옷까지 다 입고 나왔다.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에 방금 갈아입은 옷이 다시 찝찝한 상태로 젖어들었다. 그러다 방을 오가는 복도에서 마주친 외국인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월을 터번처럼 머리에 두르고, 몸에는 커다란 목욕타월만 두르고 돌아다니는 외국인. 어깨가 훤히 다 드러나는 건 물론이고 타올로 만들어진 원피스의 길이는 꽤 짧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질렀다. 문화충격. 저 목욕타월이 풀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남자들도 오가는 이 복도에서 어떻게 저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걸까?


맞다. 2002년의 나는 꽤 보수적인 여대생이었다. 그때 당시 성별이 여자인 사람이 엄마에게 받은 교육이란 대체로 그러했다. 이후에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런던은 그나마 남자, 여자방이 나눠져 있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구한 숙소는 혼숙이었다. 하지만 체크인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분명히 16인 도미토리에 내가 체크인할 당시에는 여자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런던과 같이 남자, 여자방으로 각각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잠결에 남자 목소리가 들려서 눈이 떠졌다. 마음속으로 입을 틀어막고 또 비명을 질러야 했다. 실제로 내 방에 남자가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남자 외국인' 덕분에 나는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 그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고 함께 체크인한 듯한 여자 외국인은 등을 훤히 내어 놓고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다. 또또 문화충격. 둘이 사귀지? 맞지? 그래서 둘이 여행 중인거지?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Your boyfriend?"

"No. just friend."

그냥 친구라니. 연인 사이가 아니라니. 그냥 친구사이에 남녀가 여행을 다니다니. 등을 돌리긴 했으나 남자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다니! 그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일기장에도 없는 내용이지만 또렷이 기억난다.


충격의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린 시절 녹아내릴듯한 여름 더위를 등목으로 날려버리는 동네 오빠들을 부러워하던 여자꼬맹이였다. 여자도 웃통을 까고 다닐 수 있으면 편하겠다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문화란 그 속에 속해 있으면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니 애초에 그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문화권에 살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 영국에는 맛있는 음식이 없다는 말. 거리를 걷는 중에 사람들이 저마다 샌드위치를 들고 다니며 먹는 것을 보고 나도 한 번 사 보았다. 한 입 베어 물고는 웩,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밀가루 맛이 강하게 나는 토르티야에 비릿한 속재료. 연어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전까지 먹어본 적 없던 생선이었다. 현지인들을 따라 사 먹다가 돈 버린 경험 중 하나이다. 런던에서 유명한 음식은 오직 피시 앤 칩스뿐.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머물렀던 그 런던의 호스텔은 지금도 있을까? 네이버에 검색해 보았다. 위치상으로 봤을 때 여긴가 싶은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스마트 하이드 파크 인 호스텔'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스물 셋의 나를 만나 볼 수 있다고? 그 거리를 다시 걷는다면 기억이 온전히 더듬어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를 꿈꿔보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더이상 만26세 이하의 배낭여행자는 아니지만 다시 한번 유스 호스텔에 묵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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