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라색 인간입니다

Chapter 1. 빨간 맛 - 다섯 번째 이야기 "소비요정"

by 낭만부인

Chapter 1 빨간 맛 (본능적인 나)


5. 소비요정_택배가 도착했습니다


띵동,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문자와 재난문자가 쏟아지고 있는 요즘, 가장 반가운 문자가 바로 택배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나의 소중한 제품이 오늘 집문 앞에 와있다니, 집에 가서 언박싱 할 생각에 어깨가 들썩이는 하루다. 휴대폰과 물아일체가 되어 지내는 요즘은 24시간 쇼핑이 가능해졌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날씨를 확인하다 이번 주의 혹한 소식에 수면양말을 바삐 검색해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들을 눌러보다 나도 모르게 뜬 신상 원피스를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점심을 먹다가도 여기저기 눈팅을 하던 SNS에서 사막 같은 내 피부를 물광 피부로 만들어준다는 수분크림을 또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의식 없이 보고 있던 너튜브에서 너무나도 먹음직스럽게 불막창을 구워 먹는 크리에이터를 보고는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를 외치며 불막창을 폭풍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이렇게 하루 종일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쇼핑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이것저것을 담으면서 나의 장바구니를 늘리고 있다.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다던 수면양말은 두 번의 세탁으로 따뜻함을 잃어버렸고, 슈퍼모델처럼 보이게 해준다는 허리 잘록한 원피스는 내 몸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가 막힌 S라인 대신 듬직한 H라인을 선사한다. 쩍쩍 갈라지는 내 피부에 빛을 선사하겠다던 수분크림은 원래 쓰고 있던 로션과는 별다를 것 없는 촉촉함을 선물한다. 그나마 나에게 위로가 되는 밀키트 제품. 분명 너튜브 크리에이터가 먹던 그 불막창과 같은 브랜드인데 내 손이 저주를 받은 건지 우리 집 가스레인지가 시원찮은 건지 영상에서 보던 그 군침 도는 비주얼과 맛은 온데간데없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 번의 쇼핑 실패를 겪으면서도 ‘이번은 다르겠지.’라는 마음으로 또다시 쇼핑창을 활성화시킨다. 남들처럼 트렌디하게 살기 위해 하나, 남들보다 더 멋지게 보이려고 하나, 남들만큼 행복해지려고 또 하나. 어쩌면 지나고 보면 필요도 없는 수많은 예쁜 쓰레기들을 차곡차곡 소비하고 실망하고 또다시 소비한다. 특히, 마음이 허할 때 더욱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로 택배함을 꽉꽉 채운다. 마음의 공허함을 물건으로나마 채우고 싶어 더욱 소비에 열정을 다한다. 나를 더욱 예뻐 보이게 할 옷과 화장품들을 사 모으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음식과 물건들로 집을 채운다. 한 달 동안 이런 소비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어느새 월급날이 돌아오지만 통통해야 할 나의 '통장'은 텅텅 빈 '텅장'이 되어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 달 동안 노예처럼 꼬박꼬박 출퇴근을 한 나인데, 남는 건 이번 달 관리비 낼 돈만 겨우 남기고서 카드사에서 한 움큼씩 들고 가버린다.

텅텅 빈 나의 '텅장'을 훑어보며, 이번 달은 그러지 말아야지 결심하면서도 또 한 달을 살아내다가 허한 마음이 쌓일 때쯤 나의 카드 사용내역도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 한정판이라는 수제 부츠가 집에 있는 그 부츠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부츠를 신는다고 해서 내가 할리우드의 그녀들처럼 보이진 않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가슴은 이미 뛰고 있고, 손은 빠르게 결제하고 있다. 저 부츠를 신고 거리를 활보해야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그 부츠와 어울리는 진한 색 청바지와 체크무늬 재킷도 다음 쇼핑 목록으로 찜 해놓는다. 저축은 삶의 큰 미덕이지만, 소비는 삶을 부드럽게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오늘도 난 경제의 흐름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소비 요정으로 부지런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구매가 완료 되었습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