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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16. 2023

또 한 분의 스승님을 모심

[책을 읽고]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다비드의 유명한 그림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순간은 꽤 대중적인 이미지다. 다소 과장적이고 연극적으로 느껴지기는 해도, 다비드의 그림은 역사적 순간을 단 하나의 화폭에 풍성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철학자의 실제 마지막 순간은 다비드의 그림보다도 더 드라마틱했다.



 번째 장면재판정에서의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세 차례에 걸쳐 말할 기회를 가진다. 첫 번째 변론에서 그는 무죄를 주장한다. 다른 모든 아테네 사람들이 그러했듯, 그도 법정에서 스스로를 방어했다. 여기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에 대한 인간적인 친근함이다. 석고상으로나 만났던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마치 그를 아는 것 같이 느끼게 된다. 대학 시절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주시던 몇몇 교수님들 생각이 난다.


주된 논리는 다이몬을 믿는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레토스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그를 "훌륭한 사람이여", "아주 훌륭한 사람이여"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다. 고매한 인격일까, 돌려 까기 화법일까.


두 번째 변론은 유죄가 인정된 그에게 어떤 벌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벌이 아니라 상을 줘야 한다고 하면서, 정부청사에서 무료 식사는 어떻겠냐고 반문한다. 유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남들은 돈 받고 하는 철학 수업을 공짜로 했던 그의 입장을 생각하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 틀림없다.


세 번째 변론은 사형이 확정되고 난 그의 소감문이다. 그는 사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아테네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무죄였으며, 무죄를 확신했다. 그런데도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진심이었음을, 우리는 플라톤의 다음 대화편에서 확인한다.



 번째 장면친구를 설득함


<크리톤>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크리톤의 대화다. 크리톤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탈옥하자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단호히 반대하며, 특유의 산파법을 이용해 친구를 설복시킨다.


판결 내용이 마음에 안 드니 아테네를 떠난다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아테네의 현재 법이 어떤 것이든, 그 법의 절차와 내용에 따른 판단에 스스로를 맡기기로 한 것은 그와 아테네 사람들 사이의 합의다. 따라서 그 합의를 지금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화의 마무리는 멋지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소크라테스, 내가 할 말이 없네."


"그렇다면 크리톤, 신이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니, 이 길로 가세."


왼쪽에서 네 번째가 크리톤. <파이돈>에 나오는 대로, 소크라테스의 눈을 감겨주고 있다


 번째 장면스승의 죽음을 회고함


<파이돈>은 파이돈이 스스로 목격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른 이에게 말해주는 내용이다. 이 대화편의 대부분은 영혼 불멸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논증이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이 논증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40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해보자. 


로마는 시골 마을이었으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까지도 아직 약 200년이 남았고, 우리나라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으며, 일본에서는 아마도 원숭이와 호모 사피엔스가 영역 다툼을 하고 있었을 시절이다.


<변론>에서 우리는 그가 스스로 말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들었고, <크리톤>에서 친구의 눈물 어린 부탁을 내치며 원칙을 따르겠다는 결의를 보았다. <파이돈>에서 우리는 그의 말뿐 아니라 행동을 본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사형 전 목욕 재개를 스스로 하고, 장례나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정말 기겁할 만한 장면은 그 다음이다.


사약을 가지고 들어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아직 몇 시간 남았으니 사약은 천천히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며 친구 크리톤은 말린다. 다른 사람들은 먹을 것 다 먹고 한참 질질끌다가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 사약을 받는데 왜 그려냐고, 아직 일몰까지 시간이 남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나는 죽는 것을 늦춰서 이익이 될 것이 없으니 지금 사약을 받겠네. 공연히 딴전 피우지 말고 내 말대로 하게."



스승님이라는 존재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플라톤이 쓴 책들의 내용은 대개 플라톤 철학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라기보다는 한 역사적 인물로 인류의 기억에 남아 있다.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에서 매번 죽는 사람이라든가.)


그의 죽음 3부작을 읽고 나서, 그가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마치, 스승님 같다. 소크라테스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침을 남겼다. 사형을 앞둔 그의 의연한 행동,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배울 수 있다면, 굳이 플라톤의 책이 아니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스승을 가졌던 그의 제자들이 부럽다. 아니, 이제 나도 그의 제자다.



사족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시고나자, 파이돈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울부짖는다. 그는 회고한다. 그것은 스승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런 분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게 될 자신을 위한 울음이었다고. 역시 훌륭한 스승에 훌륭한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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