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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2. 2023

넛지가 필요한 이유

[책을 읽고] 카스 선스타인, <항행력>

해괴한 아이디의 유튜버가 쓴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이지만, 사실은 리차드 탈러와 함께 <넛지>를 쓴 선스타인 교수의 책이다. <넛지>를 간략하게 요약한 소논문 같은 느낌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구속이 될 수 있음에도, 부정적 사회적 외부효과는 물론 선택자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넛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넛지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한데, 저자는 각각 밀과 벤담의 방식이라 부른다. 밀의 방식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절하다. 벤담의 방식은 아예 최선의 선택지를 설계한 넛지를 만드는 것이다. 선택이 어렵거나, 아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절하다. 다른 말로 하면, 밀은 자유를, 벤담은 행복을 설계하는 셈이다.


신이 아닌 다음에야, 밀의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밀의 방식이 더 좋은 사람들은 머리가 좋거나 생활에 규율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많은 선택들을 직접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즉, 부자들이 빈자들보다 대개 행복한 이유는, 그들이 빈자들에 비해 선택해야 할 상황 자체가 적어서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왜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것은 부자일수록 인생에서 져야 할 책임이 적다는 사실이다. (경제학자 에스테르 뒤플로의 말, <항행력> 54~55쪽에서 재인용)


문제는 벤담 방식의 넛지가 디스토피아로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행복 추구만이 목적인 세상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누구라도 그런 세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조차 우리에게는 디스토피아로 보인다.


결국 다시 한번 대답은 중용이다. 벤담과 밀 사이의 어딘가에 스윗 스팟이 존재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항행력>이란 결국 자기통제다. 그러나 자기통제가 언제나 쉽지는 않다. 자기통제를 조금이나마 쉽게 해주는 것이 넛지라는 사회적 설계다. 구내 식당 입구에 햄버거 코너가 있는 경우와 샐러드 바가 있는 경우를 비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한다.



저자는 평행세계라는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넛지를 옹호한다. (평행세계가 정말 존재라도 하는 것처럼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만나던 단어라, 매우 신선했다.)


예를 들어보자. 찰스는 요금이 싸지만 혜택이 적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혜택이 적은 것은 조금 걱정되지만, 요금이 싸서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평행세계에 사는 찰스는 요금이 비싸지만 혜택이 좋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다. 그 세계에서는 비싼 보험이 디폴트 옵션이기 때문이다. 평행세계의 찰스는 비싼 요금은 조금 불만이지만 혜택이 좋아 만족하고 있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선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대체로 현 상황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 기만이든 무슨 방법이든 동원하여 결국 만족하게 된다. 나쁜 이야기가 아니다. 감금증후군 환자들이 삶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는 이야기는 인간 본성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중 하나다.


결국 어느쪽이든 만족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면, 넛지는 외부 불경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적극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흡연자가 폐암으로 죽기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간접흡연을  통해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데려가려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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