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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04. 2023

철학이라는 유희

[책을 읽고] 김필영, <5분 뚝딱 철학> (2)

나는 하이데거나 데리다를 읽으면 그럴 듯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의 글을 읽어도 그렇다. 그런데 칸트는 그렇지 않다. 12개 범주 따위 외워서 뭐 한단 말인가?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결국 프로이트처럼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철학은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순수 이성 비판>은 그 당시 기준으로 일종의 과학철학이었다. 지금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한대로 그냥 소설일 뿐이다. 그런데도 칸트 하나만을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존재한다. "결론은 신이야"라고 말하는 <판단력 비판> 또한 신을 믿지도 않는 많은 학자들이 밤을 새며 연구한다.


왜일까? 철학은 궁극의 지적 유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데이비드 흄


사람 좋은 데이비드


귀납법에 종지부를 찍은 데이비드 흄의 결론은 결국 인간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르기아스의 결론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흄을 경험론 철학자의 하나로 외우는 데 그치지만, 철학사에서 흄이 가지는 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사실 버클리 쪽에 더 끌린다. 아예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보다는 뭔가 형이상학적인 것을 상상하는 쪽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벤담은 흄을 읽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다"고 말했고, 칸트는 흄을 읽고 비로소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했다. 그만큼 흄의 방법론이 치열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흄을 <사람 좋은 데이비드>라고 불렀다 한다. 독신이지만 요리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재미있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015년 BBC 설문조사 결과, 흄은 마르크스에 이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2위를 차지했다. 


흄은 말했다. "우리가 귀납법을 믿을 이유가 없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귀납법을 맹목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다."


버트란드 러셀


철학 말고 철학자


당연한 얘기지만, 철학자도 사람이다. 그래서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주장한 사람을 보게 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달을 보는 대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이다.


니체를 실제로 알고 지냈다면 꽤 불쾌했을 것이다. 그는 괴퍅한 사람을 넘어 정신병자였다. 채찍을 맞는 말을 몸으로 감싼 그의 일화가 감동스럽기는 해도, 그게 제 정신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니체의 이야기는 스피노자나 프로이트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냥 이야기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지어낸 소설이다. 그런데도 니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의 과격한 표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때문일까? 그런 니체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얼굴 자체가 논리적 오류다."


소크라테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크라테스에 관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기록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가장 광범위한 기록은 역시 플라톤의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은 사실상 플라톤이 창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셜록 홈즈나 햄릿이 실존 인물이었던 것처럼 인기가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인기가 있는 것이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소크라테스는 그 자신이 혹독하게 비판했던 소피스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었다. 고대 그리스에 수많은 철학자가 있었지만 그들을 모두 소피스트라 부르지는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당대에 소피스트의 하나로 여겨졌던 이유는, 그의 방법론이 소피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말장난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나 그의 적들 모두 결국 말장난꾼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소피스트는 사기꾼이고 소크라테스는 현자다. 역시 제자를 잘 두고 볼 일이다.


프레게는 수학적 방법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레게의 저작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젊은 날의 버트란드 러셀은 프레게의 글을 탐독했고, 그의 이론에서 오류를 발견하여 이를 편지로 전했다. 프레게는 24살이나 어린 러셀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자신의 이론을 포기했다.


프레게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퇴계 이황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전해진다. 기대승이 이황의 사단칠정론에 딴지를 걸었는데, 한참 애송이이자 젊은 학자인 기대승의 지적을 이황이 받아들인 것이다. 똑같이 주자학 탈레반이지만 내가 이이보다 이황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주자학이 나중에 유행했던 에도 막부 시절 일본에서 율곡에 비해 퇴계의 위상이 넘사벽이었던 배경에는 이런 인격적 차이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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