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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ug 10. 2023

<제르미날>의 카트린을 추모하며

*** 중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은 노동 소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는 보지 않았으나 그런 식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탄광 마을에서 일어난 파업이 소설의 주 사건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사건은 세 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며, 남자 둘과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이 구조는... 그렇다, 삼각관계라 해도 좋을 것이다.


주인공 에티엔은 외부인이다. 탄광 마을에 들어선 지식인 청년. 왠지 식상한 캐릭터라는 생각도 들지만, 졸라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1885년이다. 그러니까 비슷한 캐릭터를 다른 픽션에서 만났다면, 그들이 에티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가 탄광에서 일을 하는 첫날. 석탄 수레를 밀려고 하는데 밀리지 않는다. 그때 뒤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그와 함께 수레를 민다. 점심으로 먹던 싸구려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 수레를 미는 그녀의 이름은 카트린이다.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탄광 작업 스킬은 이미 만렙을 찍었다. 그래서 서글프다.


같은 동네의 샤발은 언젠가 카트린이 자기 아내가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 카트린이 예쁘다거나 그녀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든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남자의 딸이니까, 그리고 카트린 역시 같이 일하니까, 그냥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디에서 온 웬 놈팽이가 카트린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에티엔이 망설이는 사이, 샤발은 카트린을 데려가 동거를 시작한다.


샤발은 천하의 강아지라는 사실이 곧 밝혀진다. 그러나 카트린은 에티엔을 잊고 샤발과 함께해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샤발이 나를 데려와 주었잖아, 그러니까 나는 샤발에게 충실해야 해. 이게 웬 해괴한 논리냐고 당장 소리 지르고 싶다. 그러나 카트린이 살아온 세계의 법칙은 그러했다.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인 먼지처럼, 셋은 파업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 이 셋과 관련되어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하나뿐이다. 무너진 광산에 셋이 갇힌 것이다.


서로를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던 두 남자. 목격자도 없는 암흑 속에서 이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샤발이 죽는다. 


남은 둘은 차오르는 물을 피해 지대가 높은 곳에 걸터 앉아 있다. 그때, 샤발의 시체가 물에 밀려와 물을 떠 마시려는 카트린의 손에 닿는다. 소름이 끼친 카트린을 비명을 지른다. <남편>이라고 믿던 존재가 사실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암흑 속에서도 그녀를 떠나지 않는 그 존재에 소름끼쳐 하면서, 카트린은 에티엔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그에게 키스하기 시작한다. 둘은 암흑 속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웃는다. 소설 전체에 걸쳐, 아니, 그녀의 삶 전체에 걸쳐 그녀가 웃는 유일한 장면일 것이다.


샤발의 감촉에 비명을 지르고, 에티엔과 함께 웃는 카트린. 탄광의 부품이 아닌 인간으로서 그녀는 깨어났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사랑을 나누고 나서, 에티엔은 둑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카트린은 에티엔의 무릎에 누워 있었다. 그녀가 자고 있다고 생각한 에티엔은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그녀를 만져 보았다. 차가웠다.


<제르미날>의 카트린은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모든 픽션을 통틀어 가장 불쌍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냥 한 번, 그녀를 추억하고 싶었다. 생각날 때마다 너무 서글프다.



사족


나는 이 소설의 엔딩을 싫어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은 것이 겨우 주인공 렙업 경험치 때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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