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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04. 2023

루틴과 함께하는 삶

루틴으로 갓생 살기 - 프롤로그

회사 첫 출근과 함께 모든 것이 바뀌었다. 59킬로그램, 29인치를 유지하던 체중과 허리둘레가 동시에 아홉수를 넘어섰다. 몇 년이 지나자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토피 때문에 사용하는 스테로이드 제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평생을 달고 사는 아토피 때문에 자신 있게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이 시절 내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운동할 때, 이마에서 눈 안으로 흘러드는 것이 땀이 아니라 진물인 경우가 더 많았다. 아토피 환우들은 다들 공감할 그 고통, 이제는 옛말이다.


아토피가 나은 것은 아니다. 아토피라는 친구는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 까탈스러운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전보다 더 잘 알고 실행한 것이 차이를 만들었다.


지금 내 몸무게는 64kg(조금 왔다갔다 한다), 허리둘레는 30인치다. 건강이 저점을 찍었을 때 저 숫자들이 어땠을지는 사실 나도 모른다. 잴 엄두를 못 냈다. 지금은 체질량계 측정이 즐겁다.


오늘 측정한 내 기초대사량은 1,644kcal다. 골격근량은 33.5kg, 체지방률은 8.2%다. 체지방률이 10%를 밑도는 것은 내 목표도 아니고, 별로 좋은 현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샤워 후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체지방률이 낮은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나는 혈압도 낮은 편이지만, 맥박도 느리다. 서맥이다. 잠에서 깬 아침에는 40대 초중반이 나오고, 낮 동안에도 숨 좀 고르고 재면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가 나온다. 스포츠가 직업도 아닌 내가 서맥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버피 정도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인터벌 운동으로 인해 심폐 능력이 좋아진 결과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친구들이 너 왜 그렇게 헥헥대냐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고는 했는데, 상전벽해다.


먹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나이, 키, 몸무게로 근삿값을 구하는 해리스-베네딕트 공식에 의하면 내 기초대사량은 1,470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보다 100 이상이 더 나오는 체질량계 측정값은, 근육과 지방의 배합이 평균과 다르다는 얘기다. 


기초대사량은 말 그대로 그냥 숨만 쉴 때 하루 동안 소모하는 칼로리다. 실제로 하루에 태우는 칼로리는 여기에 적당한 숫자를 곱해줘야 하는데, 운동 수준에 따라 1.2에서 1.9 사이를 오간다. 의자왕이라면 1.2, 스포츠가 직업이라면 1.9다. 나는 운동선수가 아니라서, 'very active'에 해당하는 1.725를 곱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자. 운동으로 살을 뺀다는 생각은 판타지다. 그러나, 운동을 많이 하면 칼로리를 더 태울 수 있고, 따라서 그만큼 더 먹을 수 있다. 내가 그 살아 있는 증거다. 내 하루 칼로리 섭취 목표량은 2,750인데, 이틀에 한 번은 이걸 훌쩍 넘는다. 체중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식탐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대학교 다닐 때는 토스트 한 쪽이나 프로틴 바 1개로 점심을 때우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와 의자와 엉덩이가 밀착하면서 본색이 드러났다. 지금의 나는 전전두엽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먹는 걸 멈추지 못하는 탐욕의 항아리다. (이거 유희왕 필수 카드인데...)


몇 년 전 제이슨 펑의 책을 읽고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나는 간헐적 폭식러가 되었다. 자랑스럽지는 않다. 다만, 이런 방법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간헐적 폭식은 고사하고 간헐적 단식조차도 건강에 유해하다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연구자들이 많이 있다. 도대체 누가 그런 연구를 지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별 소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간헐적 폭식도 그냥 폭식보다는 낫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감자칩이나 초코바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예전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훨씬 나은 상태다. 그냥 '간식'도 아니고, '감자칩'이나 '초코아이스크림'이라는 특정한 카테고리도 아니고, '커클랜드 케틀칩'이나 '엄마는 외계인'을 먹어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내 배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체질상 살이 찌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타이밍이다. 약 때문에 배가 나왔을 때조차 체중의 앞자리는 6을 넘긴 적이 없으니, 나조차도 안 찌는 체질일 것이라 지레짐작해 왔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랩지노믹스 유전자 검사 결과는 3가지 슈퍼파워와 3가지 하찮파워를 보여준다. 하찮파워 세 개가 모두 비만과 관련 있다. 나는 배둘레햄 장인이고, (티거의 친구처럼) '푸우'근한 인상이며,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라는 것이다. 목록의 다음 항목들도 화려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산소 운동에 적합하지 않으며, 요요 가능성도 높고, 운동을 한다고 근육이 생길 거라는 기대는 접으라는 무례한 충고가 난무한다. 고혈당과 고혈압에도 취약하다고 하니, 이건 뭐 그냥 종합병동인가.



다시 말하면, 해리스-베네딕트 공식값보다 100칼로리 이상 높은 나의 기초대사량, 서맥이 보여주는 심폐 능력, 낮은 체지방률, 그리고 실존하지 않는 뱃살은 모두 노력을 통해 핸디캡을 극복한 결과라는 얘기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유전자를 저주하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내 현재 건강 상태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토피를 운동으로 극복했다." 이런 무례한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운동과 생활 습관이 아니었다면, 아토피라는 까탈스러운 친구와 내가 이 정도로 잘 지내게 되는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생활 습관을 지키고 있을까? 지금의 마음가짐을 잊고 막살다가 인생의 저점을 다시 찍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 자신이 참고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개인 기록용으로 지금의 내 루틴과 습관을 적어보려 한다. 이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그건 더없이 행복한 우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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