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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21. 2023

적이 본 이순신의 위대함

[책을 읽고] 세키코세이 등, <이순신 홀로 조선을 구하다>

사토 데쓰타로, 세키코세이, 오가사와라 나가나리 등 3명의 각기 다른 시대의 일본인이 쓴 이순신 전기를 엮은 책이다.


1892년에 세키코세이라는 정체 불명의 작가가 쓴 <조선 이순신전>은 최초의 이순신 전기이며, 신채호의 이순신 전기보다 16년이나 앞선다. 이 책에 나오는 한국 지리에 관한 세세한 설명을 보면, 당시 일본이 얼마나 열심히 조선을 관찰했는가가 드러난다.


사토 데쓰타로의 글은 매우 짧다. 이순신에 대한 한 일본인의 속 깊은 존경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글에 대해 뭐라 말하기에 내용이 많지 않다.


세키코세이의 글은 가장 길고, 이순신의 입장에서 서사를 진행한다. 이 글이 놀라운 이유는, 제국주의의 맹아기를 보내던 일본의 한 식자가 보여주는 놀라운 통찰력이다. 그가 설명하는 조선 남해안 지리는 한국 사람인 나도 전혀 모르는 내용이다. 예컨대 통영이라는 지명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정말로 통영(본부)으로 삼았기에 그 명칭이 지명으로 굳어진 것인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는 이순신이 어떤 전투에서 어떤 지형을 활용했는지, 그 지형(주로 섬)이 지금(구한말) 시점에서 조선과 일본에게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지 설명하고, 글의 말미에서는 일본이 활용 가능한 조선의 섬 세 개를 추천하기까지 한다.


오가사와라 나가나리의 글 역시 이순신의 행적을 담고 있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왜 조선 원정이 실패했는가를 분석하는 큰 틀 내에서다. 육전에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왜 수전에서 연전연패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그의 분석은 정답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해 보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우국충정은 아주 잘 느껴진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칭찬하는 부분에서는 반감이 느껴지는데, 그가 임진왜란의 원흉이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히데요시가 전국시대 3걸 중에 가장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천재성과 과감성은 노부나가 쪽이 훨씬 뛰어나고, 침착, 인내, 포용 등 중국식 영웅 기질은 오로지 이에야스에게만 존재하는 특질이다. 히데요시는 어중간하다.



이순신이 워낙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인물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감으로 원균에 대한 재평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칠천량 해전의 대패는 그의 상관이었던 권율이 매타작까지 해가며 불리한 전황에서 출전을 강요해서 그렇다는 논리가 그렇다.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순신이라고 좋은 점만 있고, 원균이라고 나쁜 점만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실패했다. 이순신에게 나쁜 점을 찾지 못했고, 원균에게서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세 명의 일본인 저자들도 같은 입장이다. 그들이야말로 이순신을 헐뜯고 그의 정적을 높일 동기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점들을 찾지 못했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많은 의협지사를 배출하였다. (76쪽)


일본인이 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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