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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03. 2023

에리스리톨이 사망률을 높일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19) 에리스리톨

에리스리톨


당알코올은 공통적으로 다량 복용 시 복통 및 설사를 유발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설탕의 200배니 300배니 하는 수준의 단맛을 가졌다는 다른 대체 감미료에 비해 단맛이 약한 편이다. 에리스리톨의 경우 설탕 단맛의 70%라고 한다. 에리스리톨은 또한 0칼로리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정확하게는 1그램당 0.24kcal다. 0.5 그램 이하인 경우 0으로 표기해도 좋다는 식품 영양성분 표기 규정이 상기되는 장면이다.


에리스리톨이 들어 있는 대표적인 과일 중 하나인 수박 - 사진 출처: Unsplash의Elena Koycheva


에리스리톨이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재미있는 논문


2023년 5월, 에리스리톨이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기사가 나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일단 논문을 살펴보자. 내용은 심혈관계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살펴보니,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가 높은 사람들의 사망 위험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일단 이 논문은 상관 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고 있다.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가 높은 것과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인과 관계라는 증거는커녕 추측성 분석조차 없다. 콜레스테롤과 마찬가지로, 심혈관계 질환이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 증가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으며, 둘 사이의 양의 상관관계가 제3의 원인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이 연구는 관찰 연구다. 그냥 환자들의 기록을 살펴본 것뿐이다. 관찰 연구는 근거 피라미드에서 아주 아래쪽에 위치한다. 의학적 근거로서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 실험에서 환자들은 에리스리톨을 투여받지도 않았다. 그냥 환자들의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만을 측정했을 뿐, 에리스리톨 섭취라는 변수 자체가 연구에 들어 있지도 않다. 에리스리톨은 체내에서 합성될 수 있는 물질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체가 심혈관질환 발생에 대응하여 에리스리톨을 합성했을 수 있다는 혐의가 짙어지는 부분이다.


관찰 대상인 환자군 선정도 문제가 많은데, 관찰 집단의 평균 BMI가 29.2였고, 22%가 당뇨, 72%가 고혈압, 75.5%가 관상동맥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46.3%는 심지어 심근 경색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매우 아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한 가지 요인이 사망 위험에 끼치는 영향을 분리해 낸다는 것은, 뭐랄까, 연금술 수준의 마법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관찰 집단의 평균 연령은 65세로, 전원이 55세 이상이었다. 이 사람들이 콕 찍어 대체 감미료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에리스리톨을 구해서 별도로 섭취했을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더구나 관찰 코호트(집단)에 대한 통계는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얻어진 것들이다. 이 당시 미국인들이, 그것도 고령층이 에리스리톨이라는 대체 감미료의 존재를 알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이 논문의 또 한 가지 놀라운 발견은, 에리스리톨을 섭취했더니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농담이 아니다. 이 두 번째 발견이야말로 이 논문에서 유일하게 건질 만한 내용이다. 물을 마셨더니 몸에 수분이 증가하더라는 수준의 얘기지만, 이 논문에서 가장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실험은 그저 건강한 8명에게 에리스리톨은 며칠 동안 먹이고 나서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를 측정한 것에 불과하다. 사망 위험 연구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새로 모아서 실험을 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서도 이중맹검이나 대조군은 없었다. 이런 쉬운 연구에 왜 대조군조차 설정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아마도 연구진 구성이 근검절약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https://cafe.naver.com/brkd/1930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그렇다면 왜 이런 억지 논문이 세상에 나왔을까? 탐정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방법, 즉 이런 논문이 나왔을 때 누가 이익을 보는지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다. 


https://brunch.co.kr/@light903/383


아래 논문을 보면, 에리스리톨은 오히려 고혈당 상태에서 혈관 내피 세포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엉터리 연구와는 달리, 이 연구는 고혈당인 경우와 정상 혈당인 경우를 모두 실험했고, 직접 에리스리톨을 투여하고 혈관 내피 세포의 변화를 관찰했다. 


이 연구 결과를 고려해서 생각해보면, 심혈관계 질환에 대응해서 체내 에리스리톨 농도가 증가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더해진다. 즉, 위의 관찰 연구에서 사망자가 많은 그룹에서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가 더 높았던 것은, 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몸이 에리스리톨을 더 많이 합성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https://pubmed.ncbi.nlm.nih.gov/23755276/


게다가 이 논문의 저자들은 이해관계 충돌(conflict of interests) 관련 내용을 스스로 보고하고 있다. 에리스리톨 제조 기업인 카길 사의 연구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쪽은 규칙을 지키면서도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반면, 반대쪽은 억지를 부리면서 규칙도 지키지 않는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에리스리톨이 심혈관계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외에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논문들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지 않았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세상의 정보 왜곡 편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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