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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08. 2023

글루텐은 독... 아니 마약이 확실하다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음식 (21) 글루텐과 렉틴

이름만으로도 군침을 돌게 하는 글루텐


톰 오브라이언의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에는 많은 임상 사례가 실려 있다. 대부분은 해피 엔딩인데, 그렇지 않은 사례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70대였던 환자는 저자의 치료법을 잘 따른 결과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하니, 환자가 실토했다. 단 음식과 밀가루를 먹은 것이다. 의사의 설득에도 그녀는 완강했다. 달콤한 도넛의 유혹을 끊을 수 없다고, 그런 음식들을 먹지 못하고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도넛 사진은 해로우니 건전한 술 사진으로 대체한다 - 사진: Unsplash의Wil Stewart


우리들 대부분은, 단순히 목숨을 이어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모든 상황의 종료를 의미한다.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는 않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술 없이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술독에 빠져 서서히 죽어갈 것인가 하는 알코올 중독자의 딜레마는 사실 우리 모두의 딜레마다.


평생 정신 수양에만 몰두한 나르치스보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쾌락과 고통을 골고루 맛본 골드문트가 먼저 깨달음을 얻는 걸 보면, 그냥 막 사는 게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헤르만 헤세라는 한 사람의 희망 사항이 은연중에 반영된 이야기다. 인간의 본성이란 케이크를 먹는 동시에 그 케이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서, 헤르만 헤세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플렉스 열풍이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지만, 원래 YOLO의 의미는 우리의 존재가 경험의 총합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단지 생명 연장을 위해 다채로운 경험을 포기하는 삶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거의 모든 현대인들은 루이 16세보다 훨씬 더 풍성한 식사를 한다. 옛날에는 왕이나 겨우 맛보던 음식을 현대인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이괄의 난을 피해 도망 다니던 인조가 맛보고 감탄("절미로구나!")했다는 인절미는 현대인에게 특별한 음식도 아니다.


다양한 맛이 인류의 미각을 포로로 잡고 있지만, 그 정점에 있는 것은 아마도 글루텐일 것이다.


사진: Unsplash의Darla Hueske


글루텐


글루텐은 일부 곡물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혼합물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글루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많다. 인류가 소젖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루텐은 밀, 호밀, 보리에서 발견되지만, 대개의 곡류는 글루텐과 대단히 유사한 단백질 복합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글루텐 프리 식품으로 널리 마케팅되는 오트에는 아베닌(avenin)이 들어 있는데, 일부 셀리악병 환자들에게 글루텐과 유사한 증상을 초래한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다수의 수용체가 유사한 물질에 반응하는 걸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BPA는 에스트로젠도 아니면서 에스트로젠 수용체에 결합한다.


그래서 글루텐 민감증은 단지 글루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글루텐이 유독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글루텐을 포함한 곡물, 특히 밀이 현대 인류의 식생활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 글루텐은 호모 사피엔스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게다가 밀에는 글루텐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 밀에 포함된 단백질 중 글루텐이 차지하는 비율은 69%나 되지만, 오트에 포함된 아베닌은 단백질 함량 중 1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쌀의 경우, 오제닌(Orzenin)이라는 유사 글루텐이 포함되어 있으나 단백질 중 함량은 5%에 불과하다.


https://www.glutenfreesociety.org/why-your-gluten-free-diet-should-evolve/


셀리악병은 인체가 글루텐에 대해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증상이다. 자가면역질환으로 분류되어 있다. 즉, 인체가 외부 침입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공격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가면역질환이란 용어는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을 설명할 뿐이다.


셀리악병에는 유전자(HLA-DQ2)적 소인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유전자 단계에서 원인이 확실히 규명된 질병은 그 수가 극히 적으며, 셀리악병은 그나마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수많은 병들이 그렇듯이, 셀리악병의 원인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글루텐 섭취가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경험칙이 있을 뿐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셀리악병은 글루텐 민감증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주장한다. 글루텐 민감증은 인류 전부가 가지고 있으며,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 주장한다. 이쯤 되면, 우유 논란, 즉 유당불내증과 관련된 갑론을박과 매우 유사하다.


인류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류를 길들인 것이다. 밀 중독에 대한 해학적인 한마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매우 정확한 진단일 수 있다. 다른 종을 종족 보존에 활용하는 전략은 진화 적응에서 흔히 나타나는 전략이다. 개와 늑대가 유전적으로 거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반응이 전혀 다른 점을 보면, 이 전략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밀이 인류를 길들인 것은 이미 만 년 전 이야기다. 그러나 인간과 같이 한 세대가 긴 종에게 진화 적응이 나타나기에, 만 년이란 시간은 충분하지 않다.


식욕 안 불러오는 사진 고르느라 힘들다 - 사진: Unsplash의Shelley Pauls


렉틴


렉틴은 많은 종류의 식물, 특히 콩류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이다. 렉틴은 식물이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개발한 무기이며, 그것을 먹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인간에게 렉틴은 소화되기 어려운 물질이다. 콩류를 먹으면 가스, 복통, 설사 등 소화 불량 관련 증상을 겪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증상에 대해서는 아직 의학 용어가 없다. 렉틴 불내증 내지 민감성이라는 말이 곧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임상의학에서 이런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꽤 긴 시간이 흐른 다음일 것이다.


생각해 보자. 소화에 문제가 있는 물질을 먹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음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생각해 볼 일이다. 예컨대, 자연 상태에서 소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사육되는 소는 동물성 사료를 먹는다. 


동물성 사료를 먹는 소가 행복한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건강한지 여부는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조사를 잘 하지 않으며, 조사 결과를 널리 알리지도 않는다. 소화에 문제를 일으키는 물질을 무해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렉틴의 한 종류인 파이토헤마글루티닌(phytohemagglutinin)은 적혈구를 서로 엉키게 한다. 이런 특성을 혈액형 검사에 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렉틴이 단지 혈액형 검사 때만 적혈구를 뭉치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적혈구가 매우 작기는 하지만, 뭉치다 보면 문제를 일으킬 크기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혈액형 검사에서 파이토헤마글루티닌의 영향을 받은 적혈구는 맨눈으로 보이는 수준까지 뭉쳐진다. 적혈구가 피떡 수준까지 커지지 않는다고 해도, 적혈구가 뭉쳐서 좋을 일이 뭐가 있을까? 현대인에게 장누수증후군은 매우 흔하다. 장누수증후군 환자의 장에 도달한 렉틴은 혈액 속으로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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