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루틴 (2) 루틴 만들기
한심한 목표의 힘
습관 만들기라는 주제라면,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보다 좋은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후속작, <탄력적 습관>도 좋지만, 그 책은 어떤 면에서 <습관의 재발견>을 배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작의 핵심이 우스울 정도로 사소한 습관으로 시작하라는 것인데, 후속작에서는 더 많은 일들을 습관 목록에 넣으라고 유도하기 때문이다. 루틴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은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습관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사람이라면 폼을 잡아가던 루틴이 형체도 없이 흩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조언이다. 습관 만들기에 관해서 책을 딱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습관의 재발견>을 추천한다.
좋은 책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의 메시지는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심할 정도로 사소한 목표를 세워라. 이 책에 나오는 예는 팔굽혀펴기 하루 1개다. 나처럼 분수를 모르고 덤비다가 팔을 다친 경우라면 몰라도, 팔굽혀펴기 1개를 못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팔굽혀펴기 1개를 못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핑계 역시 만들기 어렵다. 12시가 넘어 술에 떡이 되어 귀가했다 하더라도 팔굽혀펴기 1개 못 하겠다는 핑계는 찾기 어렵다.
팔굽혀펴기를 1개 하고 난 다음에는 할 일 목록의 해당 항목에 체크 표시를 할 수 있다. <한심할 정도로 작은 목표>를 세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스갈량 내지 기갈량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행동경제학의 대부,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쓴 책, <의지력의 재발견>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의지력은 소모되는 자원이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심시간 직전, 혈당과 함께 의지력을 소진한 가석방 심사위원들은 가차 없이 <불가>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꼭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 저녁으로 미루는 것은 아주 안 좋은 전략이다. 하루 중 무슨 일이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아주 하찮은 일도 의지력을 고갈시킬 수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뿐만 아니라 혈당, 우울감, 호르몬 변화, 건강 상태, 외부 자극, 에너지 수준, 신념, 고양이가 토해 놓은 것 등, 그 무엇이든 당신의 감정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스티븐 기즈, <습관의 재발견>, 80쪽)
그래서 루틴 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아침에 배치해야 한다. <미라클 모닝>에서 핼 엘로드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섯 개의 가장 중요한 루틴을 전부 해치우고 시작하라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즉, 실현 가능성이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일을 해치운 다음에 느끼는 뿌듯함과 에너지는 그다음 이야기다.
루틴 관리를 시간 관리의 한 방법으로 생각해도 좋다. 시간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일들을 해치우는 (getting things done) 것이지, 시간 별로 할 일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시스템보다 쉬운 시스템
예전에 캐나다인 회사 동료가 데이비드 앨런의 <Getting Things Done>이라는 책을 추천해준 적이 있다. 시간 관리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유일한 책이라고 그는 말했다.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데이비드 앨런의 시스템은 거의 완벽하다.
지금 내 루틴 시스템은 데이비드 앨런의 방식대로 짜여 있을까? 아니다. 몇 차례나 시도했지만, 나는 그 시스템을 <준비>하기만 하다가 포기했다. 그의 방식대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너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시스템을 매주, 매달, 매년 재점검해야 한다. 누군가에는 큰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겠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다.
스티븐 기즈의 방식을 추천하는 것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자아 역시 많은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아토피라는 평생 친구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 현대 물리학과 인식론에 대한 짝사랑, 시간 낭비 전문가인 주제에 쓸데없이 보낸 시간을 후회하는 어이없는 성격 등등. 그러나 내 자아의 제1 구성요소는 단연 귀차니즘이다.
그런 내가 40개를 넘나드는 항목으로 구성된 루틴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스티븐 기즈의 방식은 나처럼 게으른 사람조차 루틴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나처럼 게으름이 문제라면, 한심할 정도로 사소한 목표로 시작하는 스티븐 기즈의 방식을 한번 시도해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