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루틴 (3) 도움이 되는 도구들
휴대폰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휴대폰 중독이 사회문제라고 말하지만, 도구는 도구일 따름이다. 강도가 쥔 칼과 요리사가 쥔 칼이 전혀 다른 의미이듯, 휴대폰도 모든 사람들에게 해악은 아니다. 예컨대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습관 만들기에 관한 책을 보면 달력에 표시를 하라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만져지는 물체에 표시를 하라는 식의 조언이 많다. 앞서 말했던 자기 효능감 때문인데, 실제로 물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쳐 그 결과를 감각하는 것은 자기 효능감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휴대폰 화면의 체크 박스에 v 표시가 되는 것도 시각으로 감각되는 경험이다.
화이트보드나 몰스킨 다이어리를 사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사용해 보고 내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결정하자. 일단 있는 물건을 활용해 보고, 그게 맞지 않으면 그때 물건을 늘리면 된다.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더라도, 굳이 돈부터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스마트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중독을 우려해서 전환을 미루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없이 하루, 아니 1분도 살기 어렵다. 휴대폰은 내게 제2의 뇌나 다름없다. 세계적인 시간 관리 컨설턴트 데이비드 앨런은 그의 대표작 <Getting Things Done>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할 일을 어딘가에 덜어놓지 않으면 뇌 안에 머무르며 쓸데없이 리소스를 낭비한다. 바로 그 용도, 즉 보조 메모리로 사용하기에 제일 좋은 것이 휴대폰이다.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할 일 목록 관리의 양 극단
할 일 목록(To-do list)을 관리하는 앱은 대략 38만 개 정도 있을 것이고 지금도 더 생기는 중이다. 가장 간단한 것은 단순한 메모장이다. 메모장의 장점은 가벼움과 간편함, 그리고 무형식에서 나오는 역설적인 확장성이다. 빈 공책이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과 같다.
단점도 많다. 할 일 목록을 적는 이유는 생각을 비우기 위해서이고, 머리에서 비워낸 생각을 어딘가에 정돈된 상태로 배열해야 나중에 꺼내 쓰기 좋다. 그런데 체계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메모장은 내가 직접 체계를 잡아줘야 한다. 에너지를 덜기 위해 일단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텅 빈 메모장의 반대편에는 데이비드 앨런의 GTD 시스템이 있다. 삶의 비전부터 시작해서, 중장기 목표, <언젠가 아마도(someday, maybe)> 목표, 단기 목표, 순서도에 따라 매일 정리하는 몇 개의 박스(bin)까지 존재하는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약간 덜 복잡하지만 역시 매우 정교한 스티븐 코비의 프랭클린 다이어리도 있다.
완벽한 체계라는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시스템에 숨이 막힌다. 나는 GTD도 프랭클린 다이어리도 시도해 봤다. 몇 차례나 도전했지만, 솔직히 한 달 지속하기도 힘들다. 시작할 때 해치워야 하는 숙제도 엄청나고, 주기적 점검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그것도 모자라 매일 해치워야 하는 숙제의 양도 적지 않다. 주객전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다.
메모장과 GTD의 기다란 스펙트럼 사이에 무수히 많은 툴과 앱들이 존재한다. 유명한 것으로 에버노트(Evernote)가 있다. 에버노트의 뛰어난 점이라면 역시 연동성이다. 모든 파일이 클라우드에 저장되므로 휴대폰, 집 컴퓨터, 회사 컴퓨터가 전부 연동되며, 수많은 앱과 소프트웨어와 또한 연동된다. 확장성 역시 뛰어나다. 사진, 동영상, 지도 등 첨부 안 되는 것이 없고 다양한 방식으로 메모할 수 있다.
단점이라면 앱이 약간 무겁다는 점과 어느 정도 쓰다 보면 저장 용량 때문에 유료 버전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 정도다. 그러나 더 큰 단점은 역시 장점의 뒷면이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쌓다 보면 어디에 뭘 메모했는지 찾기도 쉽지 않고, 나중에 읽으려고 스크랩해 놓은 자료들의 산사태에 압사당하기 딱 좋다. 에버노트가 GTD나 프랭클린 다이어리보다 나은 점은 시스템이 덜 복잡하다는 점인데, 바로 그 때문에 할 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머릿속 생각을 어딘가에 비워 놓으면 편하다고 말했지만, 그 비워 놓은 것이 어딘가에서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물론 이것은 에버노트의 잘못이 아니라 사용자인 나의 잘못이다. 에버노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버노트는 잘 맞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손에 맞는 도구가 최고다
결국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할 일 목록, 루틴, 그리고 일정을 관리할 것인지는 스스로 정해야 한다. 이것저것 써보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 가장 손에 맞는 도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휴대폰 앱일 필요도 없다. 온라인 툴일 수도 있고,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예컨대 종이에 펜으로 쓰는 시스템일 수도 있다.
나는 스티븐 기즈의 <탄력적 습관>을 읽고 나서 종이에 할 일을 기록하며 체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펜으로 체크할 때 느껴지는 물리적 감촉에 그다지 감명받지 못했다. 게다가 자꾸 쌓여가는 종이 기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버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만약 나중에 기록을 찾아봐야 할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비해, 휴대폰 앱이나 온라인 도구는 잃어버릴 염려가 거의 없다는 매우 막강한 장점이 있다. 에버노트를 쓰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에버노트에 접속하면 그동안 메모했던 것들을 나는 지금이라도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 못 할 수도 있고, 물리적 대미지에 의해 소실될 수 있는 <물건>보다 훨씬 안전하다.
아끼던 만화책이 장맛비에 젖어 눈물을 머금고 버린 기억이 있다. 요즘은 소장하고 싶은 만화책을 온라인 형태로 수집한다. 네이버 시리즈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의 그 만화책도 데이터라는 형식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비에 젖어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참고로 그 책은 김진의 <1815>다.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만화책을 통틀어 최고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루틴과 일정을 챙기고 할 일을 기억하도록 돕는 도구는 여러 가지를 사용해 보고 나서 한두 가지로 정착하는 것이 좋다. 다음 절에서는 여러 가지를 써본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몇 가지 도구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