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루틴 (5) 일기
방학의 적, 일기
모아키를 쓰면서 휴대폰 필기가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휴대폰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추천하기 어렵다. 에버노트로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보다 쓰는 양이 확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래서야 흉금을 털어놓는 친구라는 일기의 존재 의의를 거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보다 지구를 먼저 살아간 인생 선배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안네 프랑크는 나의 위인 목록에서 최상위권의 한 자리를 언제나 차지하고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이상한 아저씨들과 부대껴 살아가면서 그녀가 어린 나이에 삶의 중요한 측면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일기를 쓰는 행위 그 자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걷기와 잘못된 명상이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우리를 살짝 미는 것처럼, 쓰기라는 행위 역시 시점 전환 내지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을 통해 우리에게 평소와는 다른 통찰을 준다. 그저 남의 글을 베껴 쓰는 필사의 경우도 그렇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일기란 매일 쓰는 것
일기라는 단어의 정의를 생각한다면,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에 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일기를 쓰는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루틴이 그러하듯, 루틴은 루틴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제일 중요한 점은 빼먹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의 핼 앨로드나 <타이탄의 도구들>의 팀 페리스 모두 아침에 일기든 뭐든 쓰라고 조언한다.
일기라는 단어, journal은 불어의 journal에서 유래했고, 이 단어의 뜻은 daily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 기록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매일 기록하다 보니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된 것은 당연하다.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한 바로 그날, 후일 프랑스라는 나라의 국경일이 되는 그날, 루이 16세는 일기에 딱 한 단어를 적었다. 없음(rien). 지금까지 통설은 하도 정신 사납고 두려운 일들이 많았던 날이라 현실 부정 차원에서 그가 그렇게 썼다는 것인데, 일설에는 그날 사냥 수확이 없었다는 뜻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일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루이 16세가 그날에도 일기를 썼다는 것이다. 루이 16세는 대한제국 최강 고종 황제만큼이나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왕이라는 이미지지만, 어쩌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손 글씨로 써야 할까
일기를 어디에 쓰는가 하는 문제는 자유의 영역이지만, 꽤 중요한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나처럼 악필은 물론이고 글자 쓰는 속도가 느린 사람에게 손 글씨는 최악의 선택이다. 글쓰기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못 따라가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명확해 보이지만, 손으로 글자 모양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생각의 대상이 어느새 내 손끝으로 바뀌어 있다.
손가락에 잔뜩 들어가는 힘과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위에는 나 자신조차도 24시간 뒤에는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기호가 그려지고 있다. 생각을 글로 옮기다가 글씨를 생산하는 내 육체의 한계에 대해서만 늘상 생각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모든 일기의 주제가 나는 왜 글씨를 못 쓸까 하는 문제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워드로 일기를 쓴다.
타임캡슐
일기는 루틴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이야기했지만, 일기에 날짜 내지 시점을 기록하는 것은 나중을 위해서다. 이때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그 글이 어느 시점에 쓰였는지에 관한 정보는 참 요긴하다. 물론 나의 경우 그 정보는 대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생각이 유치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재확인하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손을 떠난 물건이 참 많다. 그 많은 것들 중 제일 아깝게 생각하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썼던 그림일기다. 어느 날은 탱크 그림과 함께 육군이 되겠다고 써 놓고, 며칠 뒤에는 비행기 그림과 함께 공군이 되겠다는 포부가 쓰여 있던, 그 낡은 공책. 일기야말로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귀한 가치를 가지게 되는 진정한 보물 아닐까. 다이어리 마련에 돈 내지 스벅 프리퀀시(이것도 어차피 돈이지만)를 투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네 프랑크는 일기를 편지처럼 썼다. 일기장에 이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중에 다시 찾을 귀한 친구라는 생각을 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