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처럼 부드럽게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아침 (1) 빵처럼 부드럽게 일어나기

by 히말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이유


이탈리아 속담에, "잠들 때는 돌처럼 무겁게, 잠에서 깰 때는 빵처럼 부드럽게"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글쎄, 앞쪽은 자신 있는데 뒤쪽은 그렇지 않다. 나처럼 느끼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케인스는 우리가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고 풍족하게 살 것이라 예언했지만, 수많은 그의 다른 예측과 달리 이 말은 적중하지 못했다. 그가 자본주의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그 반대를 예언했던 마르크스도 물론 실패했다. 그는 TV를 너무 우습게 봤다.)


우리가 아침에 빵처럼 부드럽게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삶이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시간의 노예다. 시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나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12시간에 이른다.


저녁때 집에 들어와 씻고, 밥 먹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억울하다. 나를 위한 시간을 단 1분도 쓰지 못하고 잘 수는 없다. 그래서 잠자리에 드는 대신 넷플릭스나 유튜브 세계를 방황한다. 그렇게 영양가 없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마음을 파고든다. 내일도 출근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야 한다. 아냐, 그래도 지금 자는 건 너무 억울해. 이러다가 문득 기절하듯이 잠이 든다. 그야말로 돌처럼 무겁게.


늦게 잠 들었으니 일찍 일어나기는 언감생심이다.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면 알람이 울릴 시각까지 겨우 15분이 남아 있다. 15분이라도 자야지, 하면서 다시 눈을 꽉 감는다. 왜 아직도 알람이 울리지 않지? 혹시 고장 난 거 아냐? 하는 생각에 다시 시각을 확인한다. 아직 4분 남았다. 4분이라도 더 자야 하니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알람 소리에 퍼뜩 놀라며 일어난다. 조금 전까지 꿈속의 악마에게 목을 졸리던 중이었던 것은 덤이다. 부드러운 빵 좋아하시네.


nadya-spetnitskaya-tOYiQxF9-Ys-unsplash.jpg 빵 이미지는 너무 위험하니, 반죽 이미지 (사진: Unsplash의Nadya Spetnitskaya)


알람이라는 악마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매슈 워커는 알람으로 일어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알람을 맞추지 않을 수는 없으니, 절대로 <스누즈> 기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발짝 후퇴한다. 알람을 듣는 즉시 용수철처럼 일어나라는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기상 알람 설정을 한 휴대폰을 침실 밖 거실에 멀리 던져 놓고 잠을 청하는 것이다. <스누즈> 버튼을 누르려면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와야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고 다시 자러 가는 슈퍼히어로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간밤에 3시간밖에 못 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알람이 울리는 시점에 우리는 대개 렘 수면 상태에 있다. (물론, 3시간밖에 못 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잤으며, 역시 렘 수면 중에 알람을 듣는다.) 비렘 수면에 비해 얕은 잠 상태인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 더 깨어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 양손에 거머쥔 식칼을 풍차처럼 돌리며 쫓아오는 사이코패스로부터 도망가는 중이거나, 첫사랑을 닮은 연인과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중에, 우리는 알람의 거친 손아귀에 붙들려 현실 세계로 내동댕이쳐진다.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그렇게 무식하고 무례한 알람이 좋은 영향을 미칠 리가 없다. 매슈 워커는 이를 "심혈관계에 대한 공격"이라 표현했다. 불쌍한 심장은 일주일에 5번이나 이런 공격을 견뎌야 하며, <스누즈> 버튼을 누를 때마다 탱킹 횟수는 하나씩 더 올라간다. 게다가, 평타도 아니고 치명타다.


maks-styazhkin-ei9OkVw-4O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Maks Styazhkin


아침 의식이 필요한 이유


화들짝 놀라 깬 당신은 알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상황에서 기분이 좋다면 피학성애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알고 있다. 이런 기분으로 아침을 시작하면 뒤끝이 좋지 않다. 그동안 경험으로 배운 것이다.


수많은 언어의 아침 인사는 "좋은 아침"을 주장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아마도 나부터가 그 "좋은 아침"이 꼭 필요하다고 느껴서 아닐까?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우리는 외쳐야 한다. "좋은 아침이다."


이런 조언을 건네는 책은 그야말로 널려 있다. 서로 표절을 해대는 책들이라고 평가절하하기 전에, 생각해 보자. 왜 그런 조언들이 넘쳐날까? 그만큼 효과적이라는 얘기 아닐까? <아침형 인간>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뻔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는, 그 책들의 조언을 실제로 실행했던 몇몇 사람들의 열띤 증언 때문일 것이다. 책의 조언을 따른 사람들이 느낀 변화가 진성 효과였든 위약 효과였든 상관없다. 다시 말하지만, 말은 강력하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 위약 효과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증거다.


우리 존재는 우리가 행하는 일들의 총체다. 루틴은 습관이고, 습관의 총합은 그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찌푸린 얼굴로 눈을 뜨는 습관과 비교하면, 텅텅 빈 공허한 말이라도 "오늘도 좋은 하루네"라고 말하는 습관이 백번 낫다.


머릿속으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분명하게 소리가 나도록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이 혀에서 한 번, 귀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울린다.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분명히 소리 내서 말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말을 꿈에서 했는지 현실에서 했는지 헷갈릴 것이다.)


정리해 보자. 우리는 잠 들 때 마치 돌처럼 무겁게 기절해 버리지만, 아침에는 빵처럼 부드럽게 일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자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당기고, 매슈 워커의 조언대로 일어날 시간에 더해 자러 갈 시간 알람을 설정하더라도, 상황은 조금 나아질 뿐이지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알람 소리에 심장을 꿰뚫린 상태로 일어나 오늘도 최악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 "오늘도 좋은 아침"이라고 한마디 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낫다.


나는 습관이라는 말 대신 루틴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단 한 개의 명령어로 된 목록도 루틴이기는 하다. 그러나 루틴은 여러 개의 명령어로 된 묶음이라는 생각이 보다 일반적이다. 그렇다. 이왕 자기 최면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김에, 몇 가지 항목을 더 추가해서 아예 루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아침 의식(morning ritual)>이라고 부른다.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는 단연 <미라클 모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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