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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질문에 답해보자

루틴으로 갓생 살기 - 마음 보살피기

by 히말

자살의 동기


<202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9~24세)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 차지한 지 벌써 11년째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진정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 즉 자살을 해야 하는가 여부라고 했지만, 철학적 사유의 결론으로 자살에 이르는 사건은 아직 일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에밀 시오랑도 84세까지 잘 살았다.)


생존 기계가 자멸을 택하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사태다. 생존 기계가 자폭 버튼을 누르고 나면, 유전자는 코딩 오류를 찾을 틈도 없이 함께 소멸해 버린다.


자살을 진정으로 고민해 본 적이 사람은 자살하려는 마음가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내 생각에, 숨이 끊어지기를 바라는 형태의 자해는 두 가지 동기에서 가능하다. 하나는 신체적 동기다. 신체적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다. 말기 암 환자들이 존엄사를 원하는 것이 이 경우다.


두 번째 자살 동기는 사회적 차원에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살아갈 여지가 사라지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물학적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잃는다. "내가 없어진다고 누가 슬퍼할까"라는 서글픈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면, 인간은 극단적 선택을 향해 움직일 수 있다.


Emil-Cioran-.jpg Emile Cioran


임사 체험


죽음이라는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임사 체험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임사 체험은 극단적 고통에 대한 신경 체계의 반응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단말마적 고통에 반응하여 도파민이 분비되는 현상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죽음의 위기에 비상 사이렌과 함께 쏟아지는 신경전달물질은 시청각의 대혼란을 가져온다. 그 와중에 우리는 빛의 터널이나 조상님, 심지어 <신>을 체험한다.


직관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지만, 임사 체험에는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 임사 체험을 통해 본 병원 모습을 묘사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의 꿈에는 시각 이미지가 없다고 한다. 그런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 임사 체험을 통해 시각 이미지를 처음 경험한 것이다.


임사 체험 역시 하나의 내러티브이므로, 문화적 맥락에서 윤색된다. 그래서 우리는 갓 쓴 사신을 보는 반면 유럽인들은 낫 든 사신을 보게 된다. 자살 실패자의 임사 체험이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도 그런 의미에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임사 체험이 빛의 터널로 대표되는 긍정적인 시청각 경험인 반면, 자살 실패자의 임사 체험은 어둠, 공포, 혐오 등의 이미지를 동반한다고 한다.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도덕 코드라고 심어 놓았단 말인가.


용서받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죄가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라고, 거의 모든 종교가 한목소리로 말한다. 종교는 해당 집단의 결속이라는 기능을 위해 진화한 것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도 그 집단에 이득이 되기 어려운 자살을 악행으로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casey-horner-265UjRsLgd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Casey Horner


고통의 크기


그러나 나는 극단적인 고통, 즉 죽음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지로 보이는 그런 고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없는 타인이 그러한 결정에 대해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릴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자살이라는 결정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자살 시도 중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살 시도를 후회한다고 한다. 많은 자살자들이 자살을 위한 행동을 하고 나서, 즉 뛰어내리거나 뭔가를 삼키고 나서 후회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주 심각한 생존 편향을 가진 샘플들 아닌가. 말 그대로, 생존한 사람들만 그런 증언을 할 수 있다. 자살 시도에 성공한 사람들이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고 나서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영원히 알 방법이 없다.


요약하면, 자살의 결과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동기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 번째 경우, 즉 신체적 고통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존중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나는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는데, 악용 내지 남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두 번째 동기, 즉 사회적 고통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에 대해서라면, 더욱 부정적인 입장이다. 신체적 고통에 비해 볼 때, 정신적 고통은 일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고통을 영원한 것으로 오해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순간을 잘 견디면 되는 것이다. 마음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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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보살피기


마음 관리에 관한 책이야말로 요즘 서점 메타를 석권하는 주인공들 중 하나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나는 그중에서 두 권을 추천하고 싶다. 힐러리 헨델의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는 "변화의 삼각형"이라는 상당히 괜찮은 분석 도구를 가르쳐준다. 꽤 많은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만, 어차피 자살 생각이 머릿속을 메운 상황이라면 달리 할 일도 없을 테니 변화의 삼각형으로 자신의 마음을 분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의 특별한 우울>은 어릴 적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정신과 전문의, 린다 개스크의 책이다. 그녀는 평생 시도해 왔던 수많은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프로작과 상담 전화는 기본이고, 리튬은 물론 전기 충격 요법까지 나온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고문처럼 묘사되는 그 요법을 그녀는 자청해서 받았다. 그야말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녀는 우울증에 맞서 싸워왔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입력받은 정보를 그대로 출력하는 것은 별로 권할 만한 일이 아니다. 린다 개스크 자신도 수많은 치료법에 대해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우울증은 상실 경험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부 사건이 그대로 있는데 알약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당연히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그래도 처방 약을 먹어야 한다고, 그녀는 대답한다. 약은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고, 더 잘 잘 수 있게 한다. 신체에서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우울증에 있어 복용 약은 CPR과 마찬가지다. 일단 육체를 살려 놓는다. 그래야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있고, 앞날을 계획할 수 있다. 법륜 스님이 늘 말씀하시는 대로, 정신과 처방 약은 일단 자살을 막아준다.


린다 개스크는 마음 챙김과 인지행동치료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지치료사 C가 자신에게 건네준 문장을 자기 책에 옮겨 놓고 있다. 우울증이 자꾸 왜곡하는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문장이다. 한번 읽어보자.


나는 지금 내가 있고 싶지 않은 곳에 있다. 주위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뿐이다. 나도 그중 몇 사람은 정말 싫다. 야심만만하고 당당한, 저마다 저의를 감추고 뭔가 벼르고 있는 사람들. / 잠깐 멈추자. 숨을 크게 쉬자. 내가 왜 여기 있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생각하자. 내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그런 것들을 이루려면, 사람들과 한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좋아할 필요도, 그들이 나를 좋아할 필요도, 그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 내 고양아를 무릎 위에 앉히고 귀를 쓰다듬고 있다고 생각하자. 말할 기회를 가만히 기다리다가, 숨을 다시 크게 쉬고, 최소한의 말로 내 요지를 전하자. 그리고 입 닫고 있자.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319쪽)


우울증이 없어도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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