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명상
유아론
우리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산다. 인식하는 주체가 전 우주에 나 하나뿐이라는 가설을 확정적으로 반박할 증거는 절대 확보할 수 없다. 우주와 태양과 지구와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는 세상이 출현할 확률보다, 망상에 특화된 뇌가 허공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가 다음 순간에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더 크다.
A. J. 에이어의 <언어, 진리, 논리>의 한 챕터는 유아론에 관한 것이다. 엄청난 기대는 금물이다. 그는 단지 추론을 통해, 세상에 다른 인식 개체들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추론을 통해 결론 내린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실존적으로 고뇌할 필요가 있을까?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추론된 존재에 대해 왜 우리는 목매는가?
차라리 논리적 추론을 이용해 내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 더 건강한 방식의 고뇌 아닐까.
성선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라는 주장 하나만을 500쪽에 걸쳐 설득하는 책,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조차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좋게, 남들에 대해서는 실제보다 나쁘게 생각한다. 내가 저 사람이 싫은 만큼 그도 나를 싫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터에서 위안을 찾지 말라는 조언이 있다. 사람들끼리 서로 마음이 맞는 일은 대단히 희귀한 사건이다. <휴먼카인드>에는 아타 섬에 고립된 6명의 아이들이 1년이 넘는 동안 서로 협력하여 잘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윌리엄 골딩의 영원한 고전, <파리 대왕>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는 단 하나의 사례를 근거로 주장한다.
150
150이라는 숫자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 사람이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의 상한이라고 한다. 나는 이 숫자도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숫자가 소설에 나오지는 않지만, <파리 대왕>에서 섬에 도착한 아이들의 숫자는 적어도 10명은 넘는다. 반면 아타 섬에 고립된 아이들은 6명이었다. 물론 6명이 사이 좋게 1년 넘게 지낸 것도 대단하기는 하다.
대개의 경우, 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150명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1년만 같이 지내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화목한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단지 망상일 뿐이다.
그런 이상을 좇는 대신, 내가 왜 일터에 와 있는지를 생각하자. 니컬러스 부스만의 <90초 첫인상의 법칙>에는 KFC 룰이라는 것이 나온다.
원하는 것을 알라. (Know what you want.)
무엇을 얻고 있는지 파악하라. (Find out what you're getting.)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행동을 바꿔라. (Change what you do until you get what you want.)
일터에 온 이유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다. 동료들과 화목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도 힘겹게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한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자. 회사에서 내 몫을 해내며 오늘 하루를 잘 넘기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 루틴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명상
많은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명상 또는 마음 챙김이다. 명상이라는 단어가 이미 많이 오염되어서, 뭔가 형이상학적 이미지로 하늘 위에 붕 떠 있어서 마음 챙김이라는 단어가 새로 고안된 것 같다. 그 마음 챙김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또 다른 단어를 만들어 퍼뜨리려고 하는 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는 본질이다.
명상은 유튜브 영상 또는 명상 앱으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과금 체계가 사악한 명상 앱이라도 기본적인 명상 도움 기능은 무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 어렵다면 Headspace 또는 Calm을 추천한다.
Headspace는 명상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돋보인다. 앱을 만든 앤디 퍼디컴은 동남아시아에서 승려 생활을 10년 넘게 한 스님 출신이다. 명상 전문가인 셈이다. Headspace는 그런 그의 경험이 잘 녹아 있다. 무료 버전에서도 모자라는 기능이 없다. 명상할 때 잡생각이 자꾸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상 초보자는 그런 생각들을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망치로 때려 다시 어딘가로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앤디 퍼디컴은 설명한다. 도대체 무슨 잡생각이 떠오르는지, 관찰하라는 것이다. 명상은 길가에 앉아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고속도로는 당신의 마음, 그 위를 질주하는 차들은 당신의 생각이다.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은, 고속도로 위로 올라가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생각은 마음의 본성이다. 도로가 자동차의 통행을 위해 지어졌듯이, 마음은 생각을 담기 위해 존재한다. 명상은, 그대로 길가에 앉아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그렇게 지켜보는 일이 점차 쉬워질 게다. 얼른 도로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점차 줄어들고 제자리에 앉아 오가는 생각을 그저 지켜만 보는 일이 하루가 다르게 쉬워질 것이다. 명상은 바로 그렇게 깊어지는 법이다." (앤디 퍼디컴, <헤드스페이스>, 65쪽)
Calm은 명상에 적절한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장기다. 명상에 어느 정도 숙달되어 설명이 필요 없는 단계라면, Calm이 더 적절할 수 있다.
Headspace나 Calm의 역할을 하는 유튜브 영상도 얼마든지 있다. 스님 말씀을 들으며 명상 하도록 만들어진 영상도, 명상에 적당한 음악이나 ASMR을 제공하는 영상도 검색 결과가 쏟아진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또는 화톳불이 타는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
상관없어 보이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서로 통한다. 마음의 수렴진화라고나 할까. 하이데거와 노자는 시대도 배경도 삶도 전혀 달랐지만, 실존의 문제에 대해 답하려 했다는 점에서 만난다. 도덕경의 유명한 한 구절을 감상하자.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 통에 꽂혀 있으나
그 바큇살이 없는 빈 곳(無) 때문에 바퀴로서 의미가 있으며,
흙으로 빚어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나,
그 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울 수 있는 이유는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 (노자, <도덕경>, 제11장)
좋은 책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처드 칼슨, <스톱 씽킹>
힐러리 헨델,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린다 개스크, <당신의 특별한 우울>
마리안 에스타페, <마음 홈트>
질 볼트 테일러,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현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앤디 퍼디컴, <헤드스페이스>
노자, <도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