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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9. 2024

유발 하라리와 카를로 로벨리가
도달한 같은 결론

[책을 읽고]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5)

책 제목이 결론이다.

나라는 관찰자 없이는, 세상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

유아론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다.

불교철학이다.


세상은 실체의 연결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연결이다.

선으로 연결된 점들이 실체가 아니라, 그 연결선 자체들이 실체다.

실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주장인데, 실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언어의 한계다.

부처님 말씀이 무한한 동어반복인 이유다.


이탈리아인 로벨리는 참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그는 마지막 챕터에서 셰익스피어의 걸작 <푹풍>을 인용한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tempest도, 베토벤의 tempest도 참 좋아한다.)


William Hamilton이 그린 프로스페로, 미란다, 그리고 에어리얼


얘야, 너 몹시 심란한 얼굴이구나,
  당황했나보구나. 자, 기운 차려라.
  여흥은 이제 끝났어. 여기 있는 배우들은
  이미 말했듯, 모두 요정이었고
  공기 속으로, 옅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지.
  그리고 주춧돌도 없이 지어진 환영처럼
  구름 걸린 탑도, 화려한 궁전도
  장엄한 사원도 거대한 지구 그 자체도
  그래, 그 안의 모든 것도 녹아내려
  이 실체 없는 광경이 사라지듯,
  구름 한 조각 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꿈을 만드는 재료, 우리 짧은 인생은
  잠으로 끝맺는 것.
(셰익스피어, <폭풍> 중에서,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163쪽에서 재인용)


자신의 마법에 놀란 이에게 프로스페로는 말한다.

이건 가짜야, 배우들이 만든 연극이자, 꿈에 불과하다.


세상은 연결에 의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에 불과하다.

꿈과 같은 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그것을 붙잡으려 하는 일은 어리석다.


유명한 고전 SF 영화, <금지된 행성>은 <폭풍>의 (매우 훌륭한) 번안 작품이다



결론


마이클 싱어의 책은 불교철학에 관한 것이니 그렇다 해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나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이

불교철학으로 끝맺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에피쿠로스가 그토록 갈망했던 수많은 지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늘날,

세계적인 두뇌들이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 이것이다.

2,500년 전 인도의 한 청년이 고독한 연구 끝에 얻었던 결론과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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