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눈>
아픈 역사를 그린 또 하나의 소설이다. 역사의 물길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의 물길에 휩쓸리는 두 사람을 카메라의 중앙에 놓은 점이 매우 인상 깊다. 상가 번영회에 참석했다가 빨갱이로 몰린 주인공이, 그를 달래주러 나온 사람에게 기댈까 하다가 혹시 이 사람도 프락치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니체 아포리즘 모음. 퍼뜩 정신이 나게 하는 좋은 글귀도 많지만, 서문에서 편자가 말하는 것처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거나 위험한 이야기도 많다. 무엇보다 내게 실망스러웠던 것은 그의 열렬한 쇼펜하워 빠돌이 인증이다. 뭐,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이니까.
<그날은 그렇게 왔다>
가슴 아프고, 여운이 많이 남는 에세이.
-- 장애는 불쌍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 사는 것에 항상 의미가 필요한가? 그냥 살자.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한 단면.
--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할 자유가 없는 자유란 가치가 없다. (365쪽)
--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 4천790억 원. 상위 1%가 국민소득 16.6%를 가져가는 상황이다. 더 놀라운 것은 OECD 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2위라는 점이다. (352쪽)
--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금융으로 돈을 버는 모습이 보인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고 곧 무슨 일이 터질 겁니다.” (105쪽,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학 교수)
-- 이것이 우리 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가 된 이유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출 문자가 날아오고, 여기저기 은행에서 대출 안내문을 보내는 이유이다. 고객이 대출을 해가야 은행은 새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 (45쪽)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
코스피, 코스닥에서 주식 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해주는 책. 선진국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개선될 수도 있는 문제들이지만, 우리와 비슷한 대만에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당하면 할 말이 없다. 재벌 경제가 해소되기 전에는 과연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인 걸까?
물적 분할, 빨대 꽂기, 먹튀 위한 상장폐지 등, 다른 나라 주식시장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주식 시장에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를 해도 정말 괜찮을 걸까?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화폐 제도가 아무 근거 없는, 허공에 붕 떠 있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멘붕한다. 그러나,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환상에서 깰 리가 없잖아,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이 시스템이 붕괴되면, 우리가 아는 세계 그 자체가 붕괴하는 건데, 설마 그럴 리가.
그런데 그 다음에,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를 읽는다. 본전 찾으면 나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존버 중인 내게, 그 존버가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다. 지금 남은 금액이라도 당장 꺼내야 하는 걸까?
얼마 전, 국민연금이 국장 철수를 사실상 공언했다. 변동성은 크고, 수익률이 형편 없는, 다시 말해 고위험 저수익 시장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성실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한국 주식 시장에서 자금이 다 빠져 나가면 어떻게 될까? 화폐 시스템이 붕괴되는 일처럼 판타지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꽤 현실성 있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이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는 이유는, 시스템적 리스크가 너무 큰 주식 시장이 저평가되어 있어서이고, 그래서 자금이 또 빠져 나가고, 그러다 보니 더 저평가되고... 이런 악순환 때문이다. 이런 순환이 계속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