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존 랭, <GMO, 우리는 날마다 논란을 먹는다> (1)
GMO를 과연 피할 수 있을까? 꽃가루는 날아다닌다. GMO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고 해서 내 밭에서 GMO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GMO가 사라지면 좋기만 할까? 가축의 절대 다수가 옥수수를 먹고 자라며, 이 사료는 대개 GMO 작물이다. 단지 GMO 옥수수를 피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님은 물론이고, 만약 이 거대한 사슬에서 GMO를 제거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눈덩이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소고기 100그램이 10만 원이라도 문제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GMO 작물은 위험하니 안전한 식품을 가져다 줄 때까지 좀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행위에 불과하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GMO 이슈 역시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요구할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GMO를 먹고 싶지는 않다는 것인데, 이런 당연한 권리가 거부되는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다. <도박 묵시록 카이지>의 유명한 대사처럼, 실제로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은 종종 목숨보다 중하다.
이 복잡하고 답 없는 문제에 대해 혼신의 에너지를 쏟아 부은 한 지식인(사회학 교수),
존 랭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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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사슬
전 세계 5억 7천만 농가에서 생산된 농업 상품들은 전 세계 수십억 인구에 유통되기 전 가공을 통제하는 소수 기업들, 즉 좁은 목을 거쳐야 한다. (43쪽)
GMO 식품을 구매하는 것은 식품 산업의 거대 기업들이다. GMO를 식탁에서 치우려면, 바로 이 기업들의 마인드를 바꿔야 하는데, 여러 가지 차원에서 그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값싼 식품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 경제는 세계 차원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상호의존성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예컨대, 소득 수준 향상으로 중국의 육식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으로 GMO 옥수수가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 이 옥수수가 동물의 입 대신 자동차 연료 탱크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유가 상승을 바라야 할 판이다.
사실 모든 문제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GMO 작물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경에는, 몬산토를 비롯한 소위 빅6의 시장 전략도 있지만, 더 간편하게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들의 선호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 책은 이 복잡한 문제를 그나마 분해하여 보여준다. 이것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문제를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고 나는 믿는다.
지적 재산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지재권은 양날의 검이다. 지재권이 없다면 혁신에 대한 동기가 크게 감소할 것이지만, 바로 그 지재권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된다. 더 문제인 것은, 지재권이 단지 혁신의 유인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인센티브와 마찬가지로, 지재권 또한 원래의 의도가 아니라 그 인센티브 자체를 취하기 위한 각종 편법을 양산한다. 비만 치료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몰리지만, 사람 목숨을 당장 살릴 수 있는 열대지방 풍토병 연구에는 연구비가 모자라는 것이 현실이다.
자선이라는 가치에 따라 만인은 자신이 겪는 극빈을 물리칠 여력을 다른 이의 풍요로부터 얻어 낼 권리가 있다. (63쪽)
존 로크가 1689년 저서 <통치론>에서 한 말이다. 놀랍지 않은가? 극빈을 물리칠 여력을 다른 이의 풍요로부터 얻어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현대 사회에 존재할까? 무역관련지재권협정(TRIPS)을 기안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는지, TRIPS에는 극빈을 이유로 지재권을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비상실시권이다.
쉽게 말해, 코로나가 창궐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다국적 거대 제약사의 지재권을 살뜰하게 챙길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예외 조항이다. 실제로 인도 정부는 이 조항에 근거해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천문학적인 가격표를 무시하고 일부 질병에 대해 싸게 치료제를 공급한 경력이 좀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면, 제약사들은 파산하고 말 것이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어마무시한 연구비를 쏟아붓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조너스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에 대해 특허권을 주장하기를 거부했지만, 이렇게 예외적인 미담을 모든 연구자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지재권에 대한 일반론일 뿐이다.
GMO 기업들이 악당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1998년 캐나다의 한 농부는 몬산토의 특허 종자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고소당했고, 패소했다. 그는 몬산토의 종자를 구입한 적이 없다. 바람에 날려온 GMO 종자가 그의 땅에 싹을 틔웠을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지재권이 혁신의 인센티브가 되는 대신 그 자신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인데, 이는 GMO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중도적으로 평가한다 해도 지적재산권은 혁신과 변화를 활성화하기보다는 사실상 일부 거대 농산 업체들의 지배 지위를 강화하고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약화시켰다. (78쪽)
몬산토 등 소위 빅6의 궁극적인 목적은 종자 시장 장악이지, 더 나은 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GMO 종자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빅6 같은 GMO 업체를 가지지 못한 국가는 식민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개의 논의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저자조차도, 지재권 문제에서 만큼은 편향된 결론을 내린다.
어떤 경우든 농산 업체들이 도를 넘어서는 바람에 혁신에 오히려 해악을 끼친 듯하다. (79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