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앤디 퍼디컴의 <헤드스페이스>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 통에 꽂혀 있으나
그 바큇살이 없는 빈 곳(無) 때문에 바퀴로서 의미가 있으며,
흙으로 빚어 그릇을 만드나,
그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드나,
그 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에 방으로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있음이 이로울 수 있는 이유는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 (도덕경 제11장)
비어 있음의 유용함을 표현한 도덕경의 아름다운 구절이다.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 명상의 목표가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접했던 명상은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마음을 비우세요, 마음을 내려놓으세요."라는 말을 띄엄띄엄, 그러나 꾸준히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무(無)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헤드스페이스(Headspace)의 설립자 앤디 퍼디컴은 10년간 명상을 수행한 승려 출신이다. 헤드스페이스라는 이름의 명상 앱도 만들었고,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했다. <헤드스페이스> 도입부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는데, 명상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고 싶은, 그렇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이 책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주로 명상에 관한 나 자신의 오해,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온 명상과의 악전고투에 관한 것이다. (29쪽)
고속도로와 푸른 하늘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두더지 잡기'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어디에선가 튀어나오면 즉시 때려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10년간 승려로 아시아 각국에서 수행했던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스승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닫는다. (이 내용은 헤드스페이스 앱 무료 프로그램에도 애니메이션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꼭 보기를 추천한다.)
명상은 길가에 앉아 고속도로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고속도로는 당신의 마음, 그 위를 질주하는 차들은 당신의 생각이다. 두더지 잡기를 하듯이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은, 고속도로 위로 올라가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생각은 마음의 본성이다. 도로가 자동차의 통행을 위해 지어졌듯이, 마음은 생각을 담기 위해 존재한다. 명상은, 그대로 길가에 앉아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그렇게 지켜보는 일이 점차 쉬워질 게다. 얼른 도로로 뛰어들고 싶은 욕구가 점차 줄어들고 제자리에 앉아 오가는 생각을 그저 지켜만 보는 일이 하루가 다르게 쉬워질 것이다. 명상은 바로 그렇게 깊어지는 법이다." (65쪽)
저자는 이 조언을 듣고 명상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자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차들을 한 대 한 대 더 정확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명상의 본질이다. 도로에 차가 가득 차 있다면, 창조적이거나 쓸모 있는 생각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비우면, 필요할 때 필요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명상은 또한 마음이라는 망아지를 조금씩 풀어 놓는 것이다. 말뚝에 묶여 있는 줄이 짧다면 망아지는 자신이 묶여 있음을 즉시 알아채고 더 심하게 날뛴다. 하지만 매일 줄을 조금씩 늘여준다면, 망아지는 조금씩 자유의 반경을 넓혀 나간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유에 다다른다.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묶인 줄이 정말 길다면, 이미 자유롭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명상은 또한 마음을 푸른 하늘과 같이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그 푸른 하늘을 우리가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하지만 푸른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명상은 단지 그 푸른 하늘을 발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그곳은 오직 푸른 하늘뿐이지. 하늘에 크고 무겁고 짙은 먹구름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그 구름 위에는 언제나 청명한 하늘이 있단다."(71쪽)
침묵에서 명상으로
명상과 관련하여 틱 낫한의 <평화로움>이 더 쉽게 읽히고 부담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책은 에세이일 뿐이다. <헤드스페이스>는 명상을 진지하게 배우려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접근, 수행, 통합이라는 명상의 3단계를 모두 가르치려 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일상생활과의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절대 쉬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영국인'이 10년간 승려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반인들에게 명상을 설명해 주려고 쓴 책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앤디 퍼디컴과 같이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란다. 이분법적 사고에 기반한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그것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사랑의 기술>에도 잘 나와 있다. 이 책은 바로 우리 현대인들이 명상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헤드스페이스>에서 가져갈 단 하나의 가르침은 무엇이 좋을까? 이 책에는 느낌이나 감정에 집중하기, 2분 명상, 10분 명상 등 다양한 연습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다. 핼 엘로드가 <미라클 모닝>의 여섯 가지 활동에 이름 붙일 때 명상(meditation)이라 하지 않고 침묵(silence)이라 한 이유는 SAVERS라는 첫머리 글자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침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더 큰 이유였을 것이다. 아침에 몇 분이든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진정되고 아침이 상쾌해진다. 사실 눈을 감고 공상에 빠져들어도 좋다. 최소한 침묵 없이 아침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명상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앤디 퍼디컴은 "명상은 하나의 기술인 동시에 하나의 경험"이라고 말하면서, 명상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반드시 명상을 실행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스카이다이빙에 관한 책을 읽고 상상을 해본다 한들, 실제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명상은 경험이다. <미라클 모닝>의 아침 의식을 여는 첫 번째 활동인 침묵을 이제는 명상으로 바꿔보자. 분명 아침이 더 상쾌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