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데닛, 로벨리, 그린, 다니엘손

by 히말

우주는 물리법칙이 지배한다.

따라서 인간이든 어떤 존재이든 자유의지라는 것을 가질 수 없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자유의지가 있는가


우선, 결정론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이,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우주에서 결정론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설령 그것이 (양자역학적) 확률론적 결정론이어도 마찬가지다.


벤저민 리벳이나 윌리엄 그레이 월터의 유명한 실험은 자유의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사람의 행동을 야기하는 신경 반응은 그걸 결정한다는 느낌보다 먼저 나타난다.


(리벳의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언제' 결정을 했느냐고 직접 물은 반면,

훨씬 똑똑하게 설계된 월터의 실험은 단추를 누르기 전에 화면이 넘어가도록 설계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데닛, <의식의 수숙께끼를 풀다> 5장을 참조할 것.)


그래서 뇌는 "내가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왜냐면..."이라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변명해야 하는 대변인 꼴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욕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는 모르며, 그러한 원인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저 자신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원인을 모르는 것일 뿐이다.” (카를로 로벨리, <화이트홀>, 3장 6절)


간단히 말해, 우리는 무지하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한다.

상술한 뇌파 실험과 부합하는 이야기이며,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을 간략히 말하자면 이것과 같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그렇게 선택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 모른다.

바로 그걸 알아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분투하고 있다.


Carlo-Rovelli-cr.Jan-Jackle-CloseUp.jpg 로벨리



데닛의 '셈이다' 연산자와 복권 비유


그러나 이 문제에 물리학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데,

철학자 다니엘 데닛이야말로 이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명쾌한 해설을 제시한다.


데닛의 책, <직관펌프>는 유용한 생각 도구들을 담고 있는데,

그중 아주 강력한 것이 "셈이다" 연산자다.


이걸 활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애먹인 난제, 예컨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진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시점에 닭이라고 부를 만한 생물이 나타났으며,

그 생물은 그 부모와 별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바로 이 녀석부터 닭이라고 부르자, 라는 합의를 하면 그 생물부터 닭인 "셈이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딱 떨어지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어느 생물은 닭이고, 그 부모는 닭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방어하기 어려운 입장이며, 별 가치도 없다.

어차피 언어는 불명확한 것에 선을 긋는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셈이다" 연산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데닛은 자유의지의 문제에도 "셈이다" 연산자가 유용하다고 말한다.

라플라스가 말한 대로 세상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절대적 예측불가능성과 실질적 예측불가능성을 구분하는 일은 별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실질적 예측불가능성은 사실상 우리의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절대적 자유의지는 없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자유의지는 있는 셈이다.


데닛은 복권의 비유로 이것을 설명한다.

생방송 추첨 복권과 달리, 즉석 복권은 당첨 여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복권을 구입하는 우리에게, 즉석 복권은 생방송 추첨 복권과 마찬가지로 예측불가능하다.

따라서 당첨 여부가 미리 정해져 있다는 말은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예측가능성이 실질적으로 없는 우리 인류에게는

실질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사실 데닛의 자유의지 논증은 글 하나로 퉁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두 글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brunch.co.kr/@junatul/1467


https://brunch.co.kr/@junatul/1473


울프 다니엘손은 <세계 그 자체>에서 자유의지의 문제 자체를 부정한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서로 배제관계에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 잘못된 언어 사용으로 발생하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철학 난제 같은 것이다.


이런 주장은 쉽지만 무책임하다.

여전히 그 문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170327_r29609.jpg 데닛



자유롭다는 감각


자유의지가 없다면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우리가 느끼는 이 자유감은 무엇인가?

둘째, 자유의지가 없다면 책임도 없는 것 아닌가?


첫 번째 문제는, 차머스 같은 사람들에게는 어렵겠지만, 사실 간단하다.

우리는 그냥 자유롭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뿐이다.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느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브라이언 그린의 <시간의 끝>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나 역시 내가 나를 완전히 통제한다고 하늘같이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정연한 논리가 아닌 '친숙함'에 기초한 것이었고, 두뇌를 통과하는 입자의 속성이 조금만 변해도 친숙한 정도는 크게 달라진다. (브라이언 그린, <시간의 끝>, 226쪽)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해, 브라이언 그린은 기본적으로 카를로 로벨리와 같은 입장이다.

우리는 미시 세계를 결정하는 이론 전부를 알지 못하기에, 자유의지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자유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린의 차별점이다.


<시간의 끝>에서, 그린은 우리가 바위보다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라기보다 '자유도'를 말하는 듯하다.

인간은 바위보다 더 다양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경우의 수, 그것을 그린은 자유라고 부르며,

자유의지가 없어도 삶이 충만할 수 있는 이유를 그린은 자유에서 찾는 듯하다


그러나 자유의지 논의가 실질적으로 중요해지는 지점은 바로 책임의 문제에서다.


brian-greene-lmu-graduate-commencement-2025.jpg 그린


책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으니 책임의 문제도 없다고 한다면, 세상은 당장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그래서 자유의지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은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데닛은 '실질적' 자유의지에 '실질적' 책임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그런 수준의 자유가 아니며,

그런 제한된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는 것이 데닛의 결론이다.


사실, 논증을 배제하면 이 문제는 훨씬 쉬워지는데, 현실적 이유 때문에 우리는 책임을 긍정해야 한다.

앞서 말한 책에서, 그린은 자유의지가 없음에도 자유가 있으므로, 책임도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명확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이 주장은 책의 '후주'에 수록되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건 나를 이루는 입자들이 그런 행동을 낳은 것이다.

따라서 내 입자들의 행동에 대해 그 총체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억지스럽다.)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에 대한 교정 역시 필요하다.

이 논리를 지키기 위해 그린은 법상 무능력자, 예컨대 정신이상자의 범죄도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그 '처벌'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정이어야 한다.

예컨대 치료로 범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면, 격리 대신 치료가 선택되어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내게는, 왠지 시원치 않게 느껴져도 논증을 시도한 데닛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절대적 포유류'여야만 포유류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절대적 책임'이 있어야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71장)


절대적 자유의지가 없다 해도, '실질적' 자유의지만으로 책임은 존재한다.



***일단, 오늘의 고민은 여기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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