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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30. 2018

제목이 뭘까

[잡식성 책사냥꾼] <제목 없는 그림책>을 읽고

<제목 없는 그림책>이라는 책을 받았다.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전부 해서 여남은 쪽 정도 될까. 책 모양도 둥글둥글하다. 표지에는 노란색 테두리 안에 "책 제목을 지어 주세요"라고 씌어있다. 표지에는 가방을 든 아저씨, 그리고 여름철 나뭇잎이 늘어진 아카시아 나무 아래에 다섯 아이가 보인다. 그래도 책 내용을 보지 않고 제목을 지을 수는 없으니, 일단 뒤로 미루고 첫 장을 넘긴다.



첫 페이지는 아카시아 나무가 홀로, 비를 맞고 있다. 단 한마디가 씌어 있다.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요."



다음 쪽에는 화사하게 푸른 이파리를 자랑하는 아카시아 나무,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모른다고, 나무는 푸념한다.



쨍쨍한 여름 햇볕에 나뭇잎이 말라 떨어지려는데, 나무는 나뭇잎을 지키려 한다. 도대체 왜?



할머니, 아저씨, 그리고 친구들이 차례로 덥다고 외치며 나뭇잎 아래로 들어온다. 그리고 "사락사락 이파리 사이로 시원한 ( )이 일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나무가 한마디 더 하면서 책은 끝난다.



책 제목이 뭐냐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든가, 한여름에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중간중간 빈칸이 있다. 위의 빈칸에도 그냥 '바람'이라고 쓰면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다. 서풍이라든가, 갈대바람(그게 뭔지는 모르나)이 일었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뭐가 일었을까?



청량감이 일었을 수도 있고, 아이들의 잡담이 '일었을' 수도 있다. 아니, 시끄럽지만 시원한 구석이 있는 한여름 매미들의 합창이 일었으리라. 그리고 아이들이 아저씨에게 물었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는 것도 있었다면서요?"



할머니가 대답한다. "가을에는 이파리가 다 떨어졌었지."



바람이, 불기는 할 거다. 기후변화로 성층권이나 열권이 대기권 높이로 내려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1년 내내, 땡볕에 말라 떨어지는 갈색 이파리다. 가을과 봄이라는 자연스러운 죽음과 재생의 순환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무는 시시때때로 재생을 위해 때를 밀어야 한다. 생명력을 위해 스스로 제 살을 깎는다. 아니면 무서운 땡볕에 하루하루 이파리를 잃어가면서, 그렇게 죽어가는 동료들의 그늘 아래에서만 파란 새잎이 나오는 형태로 나무가 적응했을 수도 있다.



매미도 울 때만 운다. 내가 뭘 알겠나. 아마 그런 기후변화에 적응한, 새로운 매미들이 등장해서 남다른 노래를 불러제낄 것이다. 아저씨도 겨울이라는 계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선명한 기억이 나는 할머니가 대답한 것이다.



이 글을 쓰려고 검색을 해보니, 아카시아 나무는 100년을 산다고 한다. 겨울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카시아 나무는 얼마를 살까? 그늘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나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지구에도 살았단다."



그래서, 제목이 뭐냐고? 올여름은 정말 찜솥같이 더웠는데, 지금은 추워서 얼어붙을 것만 같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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