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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4. 2017

부동산은 너무 비싸니, 카르페 디엠

[서평] 이상우의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의 주장은 단순명쾌하다. 우리나라 부동산은 비싸지도 않고, 앞으로 가격 하락이 크게 일어날 일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동산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근거는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다. PIR(가격-소득 배수)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으면 몇 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다. 

우리나라 주택의 전국 평균 PIR은 6 정도로, 일본, 중국, 대만 평균인 16.8이나, 태국 등 동남아 5개국 평균 19.3에 비해 현저히 낮다.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독일 평균인 7.6은 이보다 낮지만 우리나라보다는 여전히 높다.

Photo by Pawel Nolbert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정량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석 특집 '손에 잡히는 경제'에 출연한 이상우는 PIR 계산 방식에 대해서 어려움을 토로하였는데, 소득 계산에 있어 맞벌이 부부의 소득을 합산하여야 하는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손에 잡히는 경제' 이진우 앵커가 지적하였듯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맞벌이 소득을 합산하고, 비교 대상 국가들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와 여타 국가들의 PIR 격차는 사실을 왜곡하는 수준으로 커진다. 맞벌이 소득이 외벌이의 1.8배라고 가정하고 이 부분을 외국과 같이 조정하면 우리나라의 PIR은 10.8이나 된다.

PIR의 더 큰 문제는 부동산의 부동성과 관련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국 평균 집값을 전국 평균 벌이로 나눈 값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을 서울 소득으로 나눈 값을 원한다. 하지만 이 계산을 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가정을 해야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서울 평균 집값인 6억 원을 사회초년생 초봉으로 나눈 PIR은 황색 저널리즘이나 관심 가질 만한 숫자 아닌가. "30년 노예 생활해야 서울에 집 마련" 이런 제목을 뽑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IR이 주택가격의 적정성을 판단하는데 편리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투자에 있어 참고하기에는 너무 거시적인 지표인 것이 문제다. 부동산에 투자할 때에는 "한국 부동산"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그것도 무슨 아파트 몇 단지 몇 호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큰 가격 하락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공급 부족이다. 최근의 수도권 공급 물량이 살짝 과도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공급 물량이 대개 경기도, 그것도 서남부의 비인기 지역에 몰려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공급은 전혀 과하지 않다. 더구나 30년 재건축 연한에 다가서는 노원구와, 이미 재건축 연한을 넘어선 강남 4구의 이주 수요를 감안하면, 일시적으로 폭발하고 순차적으로 사라질 수급불균형은 최소한 당분간 집값을 우상향으로 이끄는 강력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이 책이 1년 전에 나오기만 했어도 꽤 참신했을 것이다. 이 책과는 약간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책에 비해 1년 정도 전에 나온 김효진 애널리스트의 <나는 부동산 싸게 사기로 했다>는 정량적 분석과 명쾌한 결론으로 큰 반향을 얻었다. 2017년 3월에 나온 이 책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수차례 반복해서 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고 있을 뿐이다. 명쾌한 주장이라도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한다.

그래도 부동산 애널리스트의 독특한 시각이 녹아 있는 점은 좋다. 우선, 저자는 부동산을 '사회적 재화'로 간주하는 시각에 대해 맹렬한 반대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 패딩 점퍼가 필수적이니 이를 '사회적 재화'로 지정해서 가격 제한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Photo by Nicolas Ignacio

집값이 지나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지방의 싼 집으로 이주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생존적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쾌적한 주거 환경을 자신의 소득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는 불평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 보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배고프지만 만한전석(滿漢全席)이 아니면 먹기를 거부하겠다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성장을 멈춘 한국 사회의 고착화로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상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략) 고급 수입차, 해외여행, 자녀교육, 명품 등에 대한 소비는 줄이지 않기 위해서는 임대료 상승이 과도해선 안 된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11쪽)

고착화된 저성장으로 인해 가계가 씀씀이를 줄였고, 이것이 저성장을 악화시킨다는 주장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저자는 기업 평가시 사용하는 ROE(자본수익률)를 부동산에 활용하여 계산해 보았는데, 가계소득을 가계자본으로 나눈 이 값은 지난 6년간 16~17%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소득 증가분을 자본 축적으로 돌리지 않고, 충분한 몫을 소비 증가에 사용해 왔다는 이야기다. 단순한 나누기 값이기는 하지만, 생각해 볼 부분이다. 내수가 부진하다는 통계와는 달리,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지 않고 있다. 자녀교육은 물론, 해외여행과 명품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차에 따라 무심하게 이 책을 읽으면 지금도 싼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도 올라갈 것이라는 흔한 주장을 다시 접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애널리스트의 시각에서 제공하고 있는 몇몇 숫자와 관찰을 종합해 보면, 2017년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색다른 감상에 다다르게 된다. 

예컨대, 소득격차를 따라갈 용기를 잃은 젊은 세대가 현재를 즐기며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을 한다. 명품 가격을 내려달라는 정책 요구는 차마 못 하겠지만 임대료 상승을 막아달라는 요구는 떳떳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이것은 인간본성의 단면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그늘일까.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망> 표지 (저작권자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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