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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26. 2021

나는 편의점은 못 할 듯

[책을 읽고] 편의점으로 먹고살기 / 한상우

블로그 이웃 중에 편의점을 여러 개 돌리는 블로거가 있다. 그래서 편의점에 대해 막연히 '괜찮겠군'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고맙게도 그런 안일한 생각을 아주 산산히 깨뜨려 주었다. 책 초입부터 아주 강렬하다.


개점 후 오래지 않아 '간도 쓸개도 다 버리고 장사를 잘 해보겠다'던 나의 약속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이봐, 저~기 담배 하나 줘봐."
편의점에 들어선 손님이 대뜸 반말로 내게 명령하듯 말했다. (11쪽)

저자는 백화점 상무 출신이다. 편의점 점주라니, 그게 가당키나 하게 느껴졌을까. 그나마 옷가게를 한 차례 말아먹었기 때문에 편의점은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라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각오를 무너뜨리는 데는 별로 대단한 계기도 필요 없었다.


편의점을 운영하려면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알바 관리, 단골 만들기, 발주 관리, 전략적으로 진열하기, 매니저와 관계 관리, 미성년자 판매 금지 품목 관리 등등. 수요의 가격 탄력성 따위를 엑셀로 돌려볼 여유는 당연히 없다. 그런 허황된 계산이 실제 이익으로 돌아올 리도 없고 말이다.


책을 열자마자 나오는 첫 홈런이 무례한 손님에 관한 것이라서, 다른 것들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 것이라 넘겨짚었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손님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기본일 뿐이다. 폐기 물품이 많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을 피하려면 발주에 있어 절묘한 외줄타기가 필요하다. 단골을 만드는 것도, 매니저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담배를 사려는 청소년을 혼내기라도 했다가는 보복을 당하게 된다. 도대체 암초가 끝도 없이 나온다. 그러나, 내게 가장 어렵게 보이는 암초는 알바 관리인 듯하다.


저자는 편의점 경영 10년의 베테랑이고, 연매출 9억을 찍은 달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영 전략이 완벽해 보이지는 않는다. 예컨대 저자는 고객 필요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유연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본인이 아닌 알바가 가게를 맡고 있는 시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악덕 편의점주가 등장하지만, 이웃 블로거의 글을 보면 최저임금 이상 수준으로 시급을 주는 점주도 많다고 한다. (나도 예전에 알바할 때 최저임금 이상을 받았다.) 그런데 글쓴이는 알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알바들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 얘기는 하지 않는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없이 어떻게 알바에게서 '주인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단 말인가. 가상 세계에 불과한 MMORPG에서도 '감사함은 골드로'라는 명언이 있다.


어른과 아이의 키높이가 다르므로 물건 배치가 달라야 한다는 점이라든가, 비상시 대응을 위해 점포 위치는 집에서 가까운 것이 좋다는 점, 경사진 곳이나 남동향 점포를 피해야 한다는 점, 개인 편의점 POS는 조작이 가능하니 조심하라는 경고 등은 대단히 귀중한 조언이다. 편의점 개업에 담배권은 필수적이고, 복권 판매도 가능하면 금상첨화라는 것도 경험자가 아니라면 쉽게 알기 어렵다. 심지어 담배 매출은 전체 매출의 40~50%를 차지한다고 한다.


판매 일기를 쓰라는 조언도 좋다. 저자의 아버지가 농사 일기를 쓴 것에 착안했다고 한다. 기록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강력한 도구다.


실제로 편의점을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조언이 가득하지만, 그래서 편의점 관련해서라면 그 어떤 책보다도 훌륭하다고 생각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전략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상품을 찾지 못해 문의하는 고객이 많다. 이때 상품이 어디 있는지 몰라 허둥대면 판매 로스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겪는다. 주인도 잘 모르는데 알바는 더더욱 찾아서 판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매장은 골든타임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는 가능한 내가 근무를 하고 있다. (164쪽)


골든타임에 직접 근무를 하는 이유는 그 외에도 수십 가지가 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알바라고 해도 경영주만큼 할 이유도, 할 능력도 없다. 저자의 편의점에서는 음료수를 많이 구매하는 고객에게 종이컵 한두 개는 서비스로 준다고 한다. 알바도 일지에 이 사실을 기록하고 그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러나 알바가 그런 유연성을 과연 얼마나 발휘해 줄까?


저자는 음료수 50개를 주문한 손님의 예를 들고 있다. 경영주인 저자는 손님을 설득해 '믹스 앤 매치'로 50개를 구매하도록 했다고 한다. 알바였다면 그저, '없어요. 50개는.'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예전에 짧게나마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중국인 관광객 여러 명이 들어와서 라면을 싹쓸이했었는데, 원하던 양보다 아주 적게 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같은 상가 내 슈퍼마켓에 가서 모자라는 양을 구입해서 채워 주었다. 영어가 안 통해서 한자로 필담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방학 동안 잠깐만 했기 때문에, 그리고 처음 해보는 편의점 알바라 재미있어서 그 정도까지 열의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편의점에 관한 추억은 내 삶에 그 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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