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Mar 04. 2021

[책을 읽고] 의자의 배신 / 바이바 크레건리드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수히 반복된 주제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이 두꺼운 책을 통해 호모 속의 다른 인류들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 그리고 현대의 사무실 환경까지 장대한 여정을 펼친다. 그래도 결론은 다르지 않다. 같은 주제를 다룬 기존의 책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단순히 걸을 것이 아니라 '빨리'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서 일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다양한 동작을 가급적 자주 하라는 조언 정도다. (서서 일하는 자세가 산업 혁명 당시 공장 노동자의 자세와 뭐 그리 다르겠는가?)


문제는 빨리 걷는 속도가 초속 2m에 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폭 70cm라면 1초에 세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운동 목적으로 걸을 때 대략 분당 110~120걸음을 걷는다. 보폭이 83~93cm 정도 나오는데, 속도로 환산하면 초속 1.6~1.7m 정도가 된다. 나는 상당히 빨리 걷는 편에 속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가 주장하는 빨리 걷기는 사실상 '경보' 수준에 해당한다.


저자는 또한 일주일에 64~80km를 걷는다고 한다. 계산해 보니, 나는 일주일에 대략 35km~42km 정도를 걷는다. 주말에 산책을 하고, 평일에도 점심 때마다 걷는데도 그 정도다. 


현대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15시간을 앉아서 지낸다고 한다. 앉아서 일하고, 앉아서 쉬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앉아 있을까? 일단 8시간 반을 자고, 의자에서 떨어져 있는 짜투리 시간이 30분은 될 것이니까 계산상 15시간은 나올 수 없다. 하루 평균 한 시간 이상은 걷는다. 그러나 그외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나는 대개 어딘가에 앉아 있다. 의자에 앉아 일하고 쉬며, 이동할 때조차 버스 좌석이나 자전거 안장에 앉아 있다. 바닥에 앉는 경우라도 앉는 것은 앉는 것이다.


서서 일하는 것조차 대안이 되지 못한다니 더욱 암울하다. 이런 암울한 업무 환경에 대해 미래 인류들은 '21세기의 원시적인 업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후세에 우리의 이상한 사무실 생활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사무실이 19세기 공장만큼 유해한 환경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763쪽)


디킨스의 덜 알려진 소설 중에 <귀신들린 남자(Haunted Man)>라는 작품이 있다. 슬픔을 치료하기 위해 슬픈 마음을 없앤 과학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슬픔이 사라지면서, 그에게서 다른 감정들도 사라져 버렸다. 남들과 공감하지 못하고, 잔인하고 냉정해진 그는 사람들에게 자주 화를 냈다. 저자는 말한다.


레드로(소설의 주인공)는 마치 DNA에 손을 댄 것과 비슷하다.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잘라내 자신이 잘못 이해한 시스템을 자신도 모르게 망쳐 버렸다. (745쪽)


인류의 육체는 충치, 과식, 평발에 적응하는 진화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그건 수백, 수천 세대가 지난 다음의 일일 것이다. 유전자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류는 유전자 가위를 질병 치료의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디킨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가 보내는 경고는 자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1년 2월 독서 목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