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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22. 2021

어느 간헐적 단식자의 고백

[책을 읽고] 먹고 단식하고 먹어라 / 브래드 필론



단식에 관한 연구에는 식품 회사의 대규모 자금이 쏠리지 않는다. 따라서 식품 회사의 입김으로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적게 먹는 게 좋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식품 회사에서 돈을 쓸 리가 없지 않은가? (43쪽)


뭔가가 몸에 좋다는 기사가 나면 일단 그 연구의 배후를 의심해 봐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걸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나조차도 커피가 몸에 좋다는 기사에는 눈이 간다. 우리는 누구나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야 말로, 대니얼 카너만의 조언에 따라 시스템 2를 작동시켜야 한다. 잠깐 멈추고 곰곰히 생각해 보자.


저자의 말대로, 단식에 관한 연구를 후원하려는 단체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전국적 체인을 가진 단식원? 그런 단식원이 신규 경쟁자들의 시장 진입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단식 연구를 지원한다고 하자. 과연 얼마나 지원할 수 있을까? 거대 식품 회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단식에 관한 연구에 이해관계자의 돈이 흘러들어올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


우선 밝혀둔다. 나는 간헐적 단식 지지자다. 3년 넘게 간헐적 단식을 실천하고 있다. 매일 무언가를 먹기 시작한 시점과 종료한 시점을 기록한다. 제이슨 펑의 <비만코드>를 읽자마자 시작한 습관인데, 단식하는 정도에는 굴곡이 있었지만 어쨌든 완전히 중단한 적은 없다. 작년 11월부터는 일주일에 3~4일 정도를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저녁 식사 후에 엄청난 양의 간식을 먹는데도 불구하고, 체중이 줄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아무리 많이 먹으려 해도 한계가 있기 떄문이다. 들어오는 칼로리가 줄었으니 체중이 주는 것도 당연하다. 저자에 따르면, 단식 개시 후 12~14시간이 지나면 체지방이 몸의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나도 운동주의자였다. 몸을 혹사시켜 칼로리를 태우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고 나면 먹는 데서 보상을 찾고는 했다. 30분을 달려서 태우는 칼로리는 밥 한 공기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마음껏 먹기 위해 운동을 했지만, 체중은 늘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인 프로그램 같은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제이슨 펑의 책조차 일주일에 몇 끼니를 먹을 것인지 구체적인 플랜을 여러 개 제시하는데,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식이요법은 지속적으로 실천하기 쉬워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저자가 권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일주일에 1~2회 24시간 공복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꼭 24시간을 꽉 채울 필요도 없다. 23~25시간 정도에 걸리면 되는 거다. 24시간 이상의 단식은 해로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권하지 않는다.


제이슨 펑의 책은 인슐린 저항성 극복을 강조한다. 늘 뭔가를 먹는 습관은 인슐린 저항성을 불러오고, 비만과 당뇨로 이어진다. 인슐린이 늘 가득한 상태로 있으면 몸은 그 상태를 기본으로 여기게 된다. 부신피질 호르몬이나 다른 대사 물질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공복 상태는 인슐린 수준을 낮추어 몸이 높은 인슐린 농도에 적응해버리는 사태를 예방한다.


놀라운 것은 23시간 단식했을 때 인슐린 수준이 30분간의 격렬한 달리기 뒤의 것과 동일한 정도였다는 발견이다. (72쪽)


운동은 물론 필요하다. <운동화 신은 뇌>와 <우울할 땐 뇌과학>이 지적하듯, 운동보다 뇌에 좋은 보약은 없다. 그러나 인슐린 저항성 극복과 체중 조절이 필요하다면(우리는 누구나 이것이 필요하다), 운동보다 쉽고 강력한 처방이 바로 간헐적 단식이다.


우리 몸에는 약 5리터의 혈액이 돌아다니고 있다. 인체는 놀랍게도 혈액 전체에 섞여 돌아다니는 포도당의 양을 5~7그램이라는 매우 협소한 범위로 제한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호르몬 균형이다. 혈당을 높이는 호르몬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은 인슐린뿐이다. 이 상황에서 음식을 몸속으로 자꾸 밀어넣으면 인슐린 체계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다.


네팔에서는 아침을 먹지 않고 스페인에서는 저녁을 대단히 늦게 먹는 등 지역마다 먹는 문화가 다르다고 말하고 나서, 저자는 자신이 사는 북미 지역에 대해 한마디 한다.


북미 지역에서는 시간 날 때마다 먹는다. 서서고 먹고 걸어가면서도 먹고 회의 중에도 먹는다. 지하철에서도 차에서도 심지어 침대에 누워서도 먹는다. 먹기 편한 곳에서 있을 때는 당연히 먹고, 먹기 불편한 곳에 있을 때도 먹는다. (185쪽)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라고 얼마나 다를까. 나는 얼마나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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