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은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드러낸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책 제목의 주된 역할은 다름아닌 낚시다. 기레기들이 기사 제목을 달 때와 같은 접근 방식이다. 얼마 전에는 '이것' 어쩌구 하는 제목에 낚인 독자가 기사에 이런 댓글을 단 것을 보았다.
- 기사 제목에 '이것'이 있으면 기레기다
많은 책들의 제목이 의역을 넘어서 오역이다. 물론, 몰라서 한 오역이 아니라 소비자를 속이려고 쓴 오역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잘 안 읽는 이유에는, 책임감이라고는 1도 없는 출판사들이 날뛰는 출판 산업의 현실도 한 몫 한다고 본다.
데이비드 스피겔할터가 쓴 <통계학 기술>이라는 엄청나게 훌륭한 책이 있다. 평범한 제목이다. 통계학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야 접근이 가능한 책인데, 한글 제목이 무려 <숫자에 약한 사람들을 위한 통계학 수업>이다. 구매자를 늘려보겠다는 아주 얄팍한 수다. 과연 통할지는 모르겠다.
몰라서 한 오역도 있다. 고의적인 사기, 그리고 원어도 모르는 자가 감히 번역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기망한 죄 중 어느것이 더 악질적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대표적인 것이 피터 스왠슨의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다. 이 문장은 소설 속에 나오는데, 물론 그 문장도 오역을 해놨다. 제대로 번역을 한다면, '그녀는 방관자 같은 표정이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소설의 원제는 <그녀가 그를 알기 전에(Before She Knew Him)>다.
물론 대개의 의역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유가 있다. 사브리나 코헨-해턴의 책 <소방관의 선택>의 원제는 <순간의 열기(Heat of the Moment)>다. 일견 너무 멋부린 제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순간의 열기'에 휩싸여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운명이다. 바로 그런 잘못된 결정을 피하기 위한 연구이기 때문에, 책 제목은 대단히 훌륭하다. 하지만 한글 제목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더욱 직관적이라서, 책 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원제보다 낫다.
아툴 가완디의 <체크! 체크리스트>의 원제는 <Checklist Manifesto>다. 그냥 <체크리스트 선언>이라 하면 될 것을 왜 저렇게 했는지, 조금 아쉽지만 넘어가줄 만한 정도다. 그런데, 의역한 이 제목이 마음에 안 드는 어떤 번역꾼은 자신이 번역한 다른 책에서 이 책 제목을 <체크리스트 선언>이라 써 놓았다. 남이 한 일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지만 그걸 부정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일이다. 입장 바꿔 놓고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엄청나게 훌륭한 의역도 있다. 존 레이티의 <운동화 신은 뇌>의 원제는 <Spark>다. 원제는 경쾌발랄한 이 책에 딱 맞지만, 책의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의역한 제목은 책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면서 이 책이 무슨 책인지까지 이야기해준다. 제목 학원에 다녔다면 이런 제목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낚아 판매부수나 늘리려는 얄팍한 생각 이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한번 생각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