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탄수화물 중독자의 고백
나는 중증 탄수화물 중독자다.
캐나다 시절 탄수화물 중독이 걱정된다고 하니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Eat fat!"
지방을 먹으라는 대단히 합리적인 조언이었는데, 영어로 하니 너무 웃겼다.
난 물론 지방도 매우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니까 말 다했다.
그러나 지방을 아무리 먹어도 탄수화물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때는 스프라이트가 아니면 갈증이 가시지 않아, 하루에 1페트병씩 마셨던 적이 있고,
한 때는 저녁 식사 후 꼭 커피와 함께 초코 케이크를 먹었으며,
한 때는 (그냥 감자도, 감자칩도 아니고) 케틀칩을 먹지 않고는 잠이 안 오는 시절도 있었다.
책을 읽고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약 두 달 정도 한 적도 있는데,
한 번도 케토시스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평생 상상도 못해봤던 변비만 얻었다.
(아니면 케토시스가 뭐 별거 아니라서 내가 잘 모르고 지나쳤거나.)
제이슨 펑의 <비만 코드>를 만난 다음부터, 내 식이요법은 딱 하나, 간헐적 단식 뿐이다.
그러나 탄수화물을 무제한으로 먹는 것도 좀 그래서, 요즘에는 탄수화물 섭취량을 체크하는 편이다.
***
밀가루 과자들은 대개 67~70%가 탄수화물이다. 100%가 아닌 게 어디냐.
과자에 초콜릿이 첨가되면 다행히 무게 당 탄수화물은 내려간다.
대신 지방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트랜스 지방이 문제되기는 하는데, 요즘에는 1인분(대체로 30g) 당 0.5g 미만인지 보통 0이라 쓰여 있기는 하다.
견과류에 대해서는 예전에 정리해 놓은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junatul/603
과일도 대단히 위험하다.
예컨대 파인애플 100g에는 탄수화물 12.6g, 식이섬유 1.4g, 따라서 당질 11.2g 정도가 들어 있다.
문제는, 파인애플 100g을 먹고 마는 산뜻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과일에는 대개 과당이 들어 있는데, 이건 대사고 뭐고 그냥 간으로 직행해서 지방으로 쌓인다.
과일이 안 좋다는 말을 하면, 보통 이런 표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과일 얘기는 사람들에게 잘 안 하게 되었다.
고기, 생선에는 탄수화물이 없다.
다만, 달걀에는 미량(개당 .38g 정도)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다. 병아리의 에너지원이겠지.
문제는 고기 양념이 탄수화물 덩어리라는 점이다.
시판되는 불고기양념 100g에는 약 27~32g의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데, 물론 거의 설탕이다.
실제로 불고기를 만들어 보면, 양념의 양이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탄수화물의 끝판왕이라면 씨리얼이다.
콘푸로스트는 1인분에 27g의 순수한 당질이 들어 있다.
문제는 1인분이 30g 밖에 안 된다는 것.
즉 90%가 당질인 매우 훌륭한 탄수화물 대마왕이다. (남은 10%의 대부분은 물론 수분이다.)
***
탄수화물 1일 섭취 권장량은 100g이다. (헉, 불가능.)
한국인의 평균 섭취량은 320g이라고 한다.
물론 이 수치는 식이섬유를 포함한 것이지만,
보통 식이섬유가 많다는 음식도 총 탄수화물의 10%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320g의 탄수화물 중 식이섬유는 최대 32g이라 보면 될 것이다.
식이섬유 대장 중 하나인 양배추를 100g 먹어야 식이섬유 2.3을 섭취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대가로 3.28g의 당질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2주간 나는 하루 평균 201g의 당질을 섭취했다.
간헐적 단식을 해도 이 정도이니, 하루 3끼를 먹었다면 어땠을까.
게다가 내가 평생 제일 많이 먹은 아침 메뉴는 다름 아닌 씨리얼이다.
일률적인 권장 섭취량은 쓸모가 없으니, 계산기를 이용해보자.
https://www.calculator.net/carbohydrate-calculator.html
나의 경우, 하루 244g 탄수화물 섭취로 체중 유지가 가능하다.
(운동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