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Sep 06. 2022

그러니까,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데즈먼드 모리스, <털 없는 원숭이>

이 책은 유명한 고전이다. 즉, 좀 오래 전에 쓰여졌다. 그러나 2017년에 동물학자 프란스 드 발 교수가 쓴 추천사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여전히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데, 이는 책의 주요 동력이 수집된 자료나 이론에 있기보다는 앞으로 설명할 사고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25쪽)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실증적 증거가 다소 부족하지만, 뛰어난 통찰력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예컨대 여성의 가슴이 수유 목적보다는 성적인 어필에 중점을 둔 디자인이라는 지적은 저자의 통찰력에 기반한 주장이지, 어떤 객관적 증거에 기반한 주장이 아니다. (이런 주장에 객관적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다른 영장류의 가슴과 비교해보면, 인간 여성의 가슴은 수유에 적당한 모양이 아니다. 플라스틱 젖병이 오히려 수유에 적당한 모양이다. 인간 여성의 가슴은 수유 받던 아기가 질식하기에 딱 좋은 모양이다.



이 책에는 인간의 동물학적 특징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모든 이야기를 소개할 수는 없으니, 타이틀 질문, 즉 도대체 우리들에게는 왜 털이 없는가 하는 질문을 생각해보자.


포유류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온몸을 감싸는 털이다. 예외는 몇 없다. 수중 생활에 필수적인 유선형을 극대화하기 위해 털을 포기한 고래 종류와 굴속에 사는 땅돼지 등 일부 사례가 있을 뿐이다.


털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체온 유지다. 인간은 고래와 마찬가지로 두꺼운 지방층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유아기의 어떤 특성을 성체가 된 이후에도 보존하는 현상을 유태보존이라고 하는데, 많은 동물들이 진화과정에서 택한 전략이다. 인간에게 털이 없는 것은 유태보존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갓 태어난 침팬지는 머리를 제외하면 털이 거의 없다. (인간에게도 털이 많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장님에게 두 눈이 있으니 시각이 멀쩡하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인간의 연약한 털은 털의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털 없는 원숭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는 우리가 물속에서 사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손의 모양, 등에 난 털의 방향, 수생 포유류와 마찬가지인 두꺼운 피하 지방 등이 이 설을 지지한다. 반면, 진화 중간 단계의 화석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은 심각한 맹점이다.


그러나 가장 독창적인 주장은 인간의 털 없음이 사회화에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벌거숭이 상태는 어떤 도구로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른 개체들에게 보내는 신호로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영장류에서도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노출된 피부, 예컨대 엉덩이가 같은 종을 구분하는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호로서 털 없음 가설은 성적 신호까지 이어진다. 수컷보다 암컷이 털이 더 적으며, 성별을 보여주는 수염이 살아남은 점 등이 강력한 증거다. 털이 없는 편이 성적 쾌감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영장류의 암컷 중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인간뿐이라는 사실도 이 주장을 지지한다. 총 8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 이 책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긴 챕터가 성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저자가 어느 쪽 주장을 지지하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동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흥미로운 점들을 많이 보여준다. 재미는 있지만, 가지고 갈 만한 내용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잊지 말고 가져가야 할 하나의 교훈이 있다.


공격의 목표는 파괴가 아니라 지배이며, 이 점에서는 우리도 근본적으로 다른 동물과 차이가 없는 것 같다. (402쪽)


그러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우리는 공격의 목표를 혼동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동료가 공격받는 데 대해 필요 이상으로 반응한다. 그 결과는 그 어떤 동물의 영역 싸움 내지 짝짓기 싸움에서 볼 수 없는 엄청난 공격성이다. 이건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


원딜이 문제임


*** 이하, 버리기 아까운 밑줄 요약


- 털 없는 원숭이는 직립 자세 때문에 성기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는 다른 개체에게 접근할 수 없다. 그래서 성기 부위를 가리게 되었고, 이로부터 옷이라는 것이 발달했다.


- 울음이라는 신호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용할 수 있지만, 웃음은 나중에 발달한다. 웃음은 타인의 존재라는 위협과 양육자라는 필요적 존재의 모순을 극복하는 장치다.


- 영장류에서 흔히 나타나는 사교적 몸손질은 결국 의학으로 발전했다. 


- 우리는 우리와 공통점을 많이 공유하는 동물들을 좋아하며, 아주 어린 아이는 큰 동물을, 좀 큰 아이는 작은 동물을 더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둔필승총 2209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