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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01. 2022

어디에나 존재하는 숫자 장난

[책을 읽고] 조한경, <환자 혁명> (2)

5년 생존률


암 수술의 성공 잣대로 흔히 쓰이는 5년 생존률은 이렇게 구한다. 암환자 중 5년 후 생존한 사람들의 비율을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 인구의 생존률로 나누는 것이다.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률은 90% 정도다. 유방암 환자가 아닌 사람들에 비해, 유방암 환자들이 5년 뒤에 살아 있을 확률이 10% 정도 낮다는 얘기다. 유방암 환자 중 90%가 5년 뒤에도 살아 있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갑상선암의 5년 생존률은 101% 정도 된다. 이게 무슨 뜻인가? 갑상선암으로 죽을 확률보다 다른 모든 원인으로 죽을 확률이 더 크다는,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얘기다. 대부분의 암은 5년 생존률이 100%가 못 된다. 즉, 암에 걸렸다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 경우보다 죽을 위험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갑상선 암의 경우, 다른 원인들에 의해 죽는 것보다 죽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참고로, 잦은 검진으로 초기의 갑상선 암을 잡아내 수술하는 걸 비판하는 의사는 엄청나게 많다. (책을 읽으면서 열 번은 접한 주장이다.)


그냥 미역으로 웰빙하자


암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죽을 위험이 증가할수록, 암의 5년 생존률은 올라간다. 예컨대 전쟁이 발발하면 암환자의 생존률이 올라갈 수 있다. 코로나19의 경우, 분모와 분자에 모두 영향을 주었을 것이므로 암환자의 생존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나중에 통계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다음 번에 어떤 질병의 5년 생존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다면, 그 의미가 그렇게 직관적이지도 않고 (대개의 경우) 희망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신약의 효능


신약의 효능을 수치로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절대위험감소(ARR), 상대위험감소(RRR), 그리고 필요치료환자수(NNT)다.


실험군과 대조군이 각각 1000명이라고 하고, 실험군(투약군)에서 30명이 사망한 반면 대조군(위약군)에서는 40명이 사망했다고 하자. 사망 위험이 4%(1000명 중 40명)에서 3%(1000명 중 30명)로 감소했으므로 ARR은 1%다. "신약으로 사망 위험 1% 감소!" 도저히 구미가 당기지 않는 헤드라인이다.


반면, 원래는 40명 죽을 것이 30명으로 줄었으니 25% 감소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이게 RRR이다. 헤드라인이 갑자기 핫해진다. "신약으로 사망 위험 25% 감소!"


헐... 25%?


사망 위험을 25% 감소시키는 신약이라면 정부 지원도 하고 보험 지원 의약품 목록에도 당장 넣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망 위험을 1% 감소시키는 약이다. 게다가 1000명에게 투약해서 10명의 목숨을 살렸으므로, 1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100명에게 투약을 해야 한다. 이것이 NNT(Number Needed to Treat)다. 신약에 세금을 투하하기 전에 살펴보기에 가장 적절한 지표지만, 당연히 제약회사는 제일 싫어하는 지표다.


제약회사에게 가장 유리한 RRR이 널리 이용되는 것은 국가 재정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의료 체계가 공산주의나 다름없는 영국에서는 의사들이 이 문제를 자주 거론한다. 제약회사가 의사들을 돈으로 구워삶을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암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항암제 투약으로 얻는 이익이 병원과 의사 개인에게 5:5로 분배된다고 한다. 앞서 말한 영국과 정반대의 경우다. 항암제 투여의 유혹을 이기려면 아주 고매한 인격이 필요한 시스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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