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이나 코인 시장에서 벌어지는 고전적인 작전으로는 펌프 & 덤프가 있다. 특정 종목을 매수해서 가격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 종목이 유망하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뇌동 매수가 나오면 적절한 시점에 털고 나오는 거다. 소위 리딩방이라는 게 위험한 이유가, 리딩방은 이 사기를 실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리딩방 운영자가 이미 사 놓았거나 살 종목을 유망하다고 찍어주면 저절로 펌핑이 되고, 다른 세력의 개입이 없다면 덤핑 시점까지도 조작이 가능하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설교를 하면서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고금의 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설교하는 내용을 정작 자신은 믿지 않는다. 내생이 없다는 거의 확신급의 믿음이 있으니까 십계명에서 하지 말라는 걸 골라서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본다. 이쪽 계열 만렙은 물론 힌두교 브라만들이다.
"넌 착하게 살아. 난 예외임."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쇼펜하워를 혐오한다.
인생은 고통이다,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세속적 쾌락만 추구한 자다. 과학자나 음악가가 부도덕한 것은 그 개인의 부도덕성에서 그치는 문제다. 그 사람의 과학 연구나 음악 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자가, 그것도 실천률을 떠들어 대는 철학자가 부도덕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자신은 믿지 않는 신념을 파는 종교인과 같은 부류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철학사에도 부도덕한 인물들은 무수히 존재한다. 그러나 쇼펜하워 수준의 쓰레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면죄부를 판매한 교황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욕을 많이 먹는 철학자로는 하이데거도 있다. 그러나 쇼펜하워와는 차원이 다르다. 실천률이 판매 상품이었던 쇼펜하워와는 달리, 하이데거의 판매 상품은 인식론이다. 그러니까, 과학에 가까운 철학 영역이다. 그의 스승은 인식론의 끝판왕인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이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방법론으로 실존 철학을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실존 철학을 실천 철학 계열이라 생각하는데, 적어도 하이데거 단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실존 철학을 실천률로 개조한 것은 사르트르다. 다들 알겠지만, 사르트르는 하이데거를 '창조적으로 오해했다(creatively misunderstood)'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뭐, 그런 것도 재주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존재와 시간>의 후반부가 나치즘에 이용된 것은 사실이고, 그런 상황을 하이데거가 방치했다는 점은 물론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대학교 총장 직위를 이용해 나치의 학생 동원을 도울 정도의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독일판 김활란인데, 나치 당원이었으니 당연한가.) 그런 적극적 악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자신의 저작물이 나치에 의해 이용되는 것을 방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살인자에게 '너 살인하면서 돈도 훔쳤잖아'라고 말하는 정도의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쇼펜하워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살인을 즐기고 다닌 연쇄살인마 격이다. 쇼펜하워는 일련의 실천 강령을 만들어 배포했지만 자신은 그 어떤 것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아주 열심이었다.
절대로 이렇게 살지는 말아라, 라는 의미에서 반면교사를 세운다면, 그 목록의 맨 꼭대기에 쇼펜하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히틀러보다도 위에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