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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

[단편] 김의 공식 (3)

by 히말

그 일이 있고 난 뒤, 놈의 전략은 못 들은 체하기로 바뀌었다. 그게 공식이었나 보다. 놈은 창고 방에 들어가서 아침이 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토사물을 치우고 나서 투덜거리는 손님에게 담배를 팔고, 화장실에서 잠이 든 취객을 깨워 가게 밖으로 내보냈다.


다행히 화장실에서는 변기 안에 구토를 해준 덕분에, 놈과 다시 한 번 싸울 일은 없었다. 나는 분노를 삭이면서 아침이 되면 사장에게 전화를 걸 궁리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지? 이건 뭐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람이니, 그가 부린 행패를 그대로 말한다고 해서 사장이 믿어줄지 의심이 들었다.


혹시 놈이 사장의 친인척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외모가 너무 달랐다. 친구라고 보기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사장은 5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는데, 설마 둘이 나이를 초월한 우정 같은 걸 과시하는 사이는 아니겠지.


여덟 시가 되기도 전에 놈은 가게를 빠져나갔다. 분명히 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근무 종료 시간을 감지하는 별도의 센서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가게를 나가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십오 분 일찍 나간 것도 사장님한테 이야기할 겁니다"라고 소리쳤지만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가게를 나가는 발걸음이 날렵하고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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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시에 포스기 정산을 하고 인수인계를 마쳤다. 평소 같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집에 돌아가서 잠을 청할 시간이었지만, 나는 100% 각성 상태로 완전히 깨어 있었다. 카페인보다 열 배는 강한 분노가 혈류를 타고 온몸을 흐르고 있었다. 이틀 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리를 두손으로 꽉 잡고, 관자놀이를 마사지했다.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니, 갑자기 브런치라는 게 먹고 싶어졌다. 평소에는 눈팅만 하던 근처 브런치 카페에 가서 무려 8천원짜리 브런치 세트를 주문했다. 회사에 취직하면, 주말에는 거기서 브런치를 즐기겠노라 상상하고는 했는데, 그 과분한 호사를 즐기는 날이 예상보다 빨리 와버렸다.


언제쯤 전화를 해야 하지? 여덟 시 이십 분이니 일어나긴 했겠지? 그래도 아홉 시는 넘어서 전화를 해야 하나? 생긴 것도 정말 다르고 나이대도 맞지 않지만, 혹시 친척이나 친구면 어떻게 하지? 아니 사장은 도대체 왜 내 시간대에 그런 녀석을 뽑은 거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었나? 아니 정말 이럴 바에야 그냥 내 시급을 올려주고 나 혼자 근무하는 게 사장한테도 더 낫지 않을까?


호밀빵 리코타 치즈 샌드위치라는 왠지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러나 접시 위에 빈 곳이 많이 있는 브런치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은 내게 온갖 생각이 날아들었다. 커피는 맛있었지만 호밀빵은 퍽퍽했다. 스트레스로 망가지는 건강을 호밀빵 따위로 막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냥 팥빵이나 치즈케잌의 단맛에 풍덩할 걸 그랬다.


일단 식사를 끝내고 전화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음식에 생각을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도대체 그게 되지 않았다. 잘못 찍힌 그림자 사진에서도 화성인 문명의 유적을 찾아내는 인간의 상상력이 나를 괴롭혔다. 리코타 치즈 모양이 놈의 광대뼈를, 루꼴라 잎 모양이 놈의 머리 모양을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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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내게 오기 전에 놈은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어딘가 다른 일자리에서 동료를 괴롭히고 있었을까? 방구석에서 게임이나 하던 히키코모리였을까? 휴대폰보다 잡지 보는 걸 더 좋아하는 걸 보면 의외로 학구파...는 아닐 것이고. 결혼은 안 했겠지? 설마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그런 녀석을... 아니지, 의외로 가족에게는 잘하는 확장형 이기주의자일지도 몰라.


내가 사회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아닐까? 세상에는 그런 양심 없는 부류가 사실은 아주 많이 있다든가 하면 어떡하지? 내가 학창 생활, 군대 생활을 너무 편하게 했나? 행정병이라서 종일 키보드만 붙들고 있어서 저런 기생충을 처음 만나게 된 건가?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군대에서 별 사이코패스를 다 만난다고 하던데, 나는 군대 때 그런 녀석을 안 만나서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된 건가? 아니, 가장 걱정되는 건 나중에 직장에서 저런 녀석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알바야 그만두면 되는 것이고, 집에서 조금 멀더라도 다른 편의점을 알아보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지. 이참에 몸도 튼튼해지고 돈도 많이 번다는 상하차 알바에 한번 도전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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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갖은 잡념을 쫓아다니다 보니 아홉 시가 되었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 소리가 두 번 가고 나서, 사장은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접니다."


"아, 그래. 무슨 일이야?" 그렇게 묻는 사장의 목소리가 왠지 정색하는 것처럼 들렸다. 내가 전화할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김공식 씨 때문에 전화 드려요."


"어, 그래? 김공식 씨? 그런데 내가 지금 운전 중이라서.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사장은 전화를 끊었다. 통화 시간 9초. 운전 중이라는 말은 사실 같았다. 스피커 폰 소리에, 감도 좀 멀었으니.


하지만 핵심은 그의 목소리였다. 김공식 씨 때문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사장의 목소리는 왠지 떨떠름한 느낌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사장은 내 전화를 예상했다는 것이고, 김공식 씨가 저런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장은 김공식이라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내 옆자리에 배치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이 그를 그런 선택으로 몰아넣었을까? 협박이라도 받은 걸까?


예상대로 사장은 내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한 시간 간격으로 그에게 전화했다. 열 시에는 아직도 운전 중이라고 했고, 열한 시에는 회의 중, 열두 시에는 중요한 미팅 중이라고 했다.


한 시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나는 이번에도 전화를 끊으면 알바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래. 좀 진정하고. 지금 회의 중이기는 하지만, 내가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할게." 그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 그만둔다면, 사장이 직접 밤 시간에 가게를 지켜야 한다. 상상하기 힘든 비상식적인 인간과 함께 말이다.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사장 팔뚝에 털이 곤두섰을 것이다.


나는 논점을 되풀이했다. "회의장 나오시면서 얘기하세요. 지금 전화 끊으시면, 저 오늘부터 가게 안 나갑니다."


"그래. 알았어. 김공식 씨 이야기라고 했지?"


"네."


"김공식 씨가 왜?"


"사장님도 아시는 것 같은 목소린데요."


"뭘?"


"일을 안 해요. 제가 혼자 일을 한다고요. 밤교대 시간 내내."


"아, 그래? 그렇게 심해?"


"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얘기를 좀 듣긴 했어도, 일을 아예 안 한다고?"


"CCTV 확인해 보시죠. 하긴, 간밤에는 창고 방에서 계속 잤으니 CCTV에 나오지도 않겠네요. 하지만 앞치마 벗고 문 열고 들어가는 장면은 나올 겁니다. 퇴근 시간 십오 분 전에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것도 나올 거고요."


"아, 정말 어떡하지? 그렇게 힘들어?" 사장의 목소리에서 진정한 짜증이 느껴졌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밤 시간이라고 해서 혼자 근무할 정도는 아니잖아요. 청소도 안 하고, 짐도 안 옮기는데 제가 어떻게 그걸 다 해요?"


"아니, 그게, 김공식 씨도 나름대로 아픔이 있는 사람이라서..."


아픔?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단어에 한순간 맥이 풀렸다. 하지만 내 삶이 걸린 문제였다. 지금 결론을 못 내리면 오늘 밤에 다시 비홀더와 마주하는 것은 나다.


"뭐 어떤 아픔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알바로 왔으면 일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사람 나이도 많고, 전에 일하던 데서도 쫓겨나서..."


"아, 그렇군요! 일을 안 해서 쫓겨난 거네요. 왜 그런 사람을 우리가 받아야 하죠?"


사장은 최대한 성의 있게 설명했다. 김공식 씨는 본사 누군가의 백으로 그 자리에 온 것이라고 실토했다. 전에는 다른 가맹점에 있었는데, 이곳까지 오게 됐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일을 안 하고 노닥거리기만 하니, 가맹점주들도 그의 안하무인을 받아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가맹점에 갈 때마다 하루 만에 본색을 드러냈다. 온갖 핑계를 대면서 일을 하지도 않는 주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대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알바생 동료들을 오만불손하게 대했다.


같이 일하는 알바들이 줄줄이 그만두니, 가맹점주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둘 이상이 근무하는 환경이어야 김공식표 농땡이가 가능한 관계로, 옮겨 다닐 가맹점 수도 제한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가맹점에서는 모조리 쫓겨난 상태라서, 이곳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출퇴근이 두 시간씩 걸리는 데도 말이다.


사장이 쩔쩔매는 것이 전화 목소리로 전해졌다. 나이도 많고, 인생사 아픔도 많은 사람이니 좀 봐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인가. 왜 내가 그래야 하냐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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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한 나를!"


이라고 영화처럼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당장 결론을 못 내면 오늘 밤에 또 석화 광선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나도 취업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고, 아버지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으며, 대학생인 동생 학비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사장은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럼 한 명을 더 쓰시던가요."


"그렇게 하면 적자야. 가게 접는 게 나아. 최저임금도 많이 올라서."


"그런 사정을 본사에 얘기하세요. 본사는 왜 그런 짐을 하필 우리 지점에 떠넘겼대요?"


"말했잖아. 이제 그 사람 받아줄 데도 없어."


"아니, 그런 사람을 왜 받아줘야 하냐고요. 애초에."


놈이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공공의 부채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놈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놈인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일단 멈췄다.


이틀 동안의 스트레스로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이긴 했지만, 김공식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사람인지까지는 내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지난 이틀 동안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어떤 말을 했는지, 그냥 팩트만 전달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장은 왜 그 사람을 감싸는 걸까? 인생사 무슨 아픔이 있었는지 말도 안 해주면서, 왜 그런 사람을 하필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 그런 사람을 보듬기는 해야 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진행하자, 다른 사람에 대해 단정 짓지 말라는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서 일단 생각을 멈추기는 했다. 그래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결국, 전화 통화로는 해결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사장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사장님이 전화를 안 받아서 잠도 못 잤어요. 어떻게 저녁때까지 깨어 있어요? 그냥 열두 시 교대 시간에 보시죠."


"그 사람이 있는 데서 얘기할 수는 없잖아?"


"그 사람한테 잠깐 카운터 보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 정도도 안 돼요? 이틀 동안 놀았는데?"


"그래도 말이 들리잖아. 여덟 시, 아니 아홉 시 어때? 가게에서 젤 비싼 도시락으로 먹자."


아, 좀생이 같으니. 저녁 먹자는 게 가게에서 도시락 먹자는 거라니. 저녁 아홉 시에 먹을 만한 도시락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녁이 해결되면 5천원은 아낄 수 있고, 어쨌든 사장과 결판이 안 나면 오늘 밤에도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은 나니까. 전화로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 보고 대화하는 게 낫기도 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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