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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4. 2023

곰팡이의 신기한 세계로의 초대

[책을 읽고] 멀린 셸드레이크,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곰팡이라는 존재에 관한 광범위한 입문서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곰팡이, 송로버섯의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처음에 이 내용을 배치한 것은 흥미를 끌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러나 문화 차이 때문인지,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네트워크에 대한 내용은 조금 나았지만, 여전히 너무 추상적이었다. 


그러다가, 진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책은 급격하게 재미있어진다. 어느 정도냐면, 이 책 200쪽까지 읽는 데 10일이 걸렸는데, 진화 이야기가 나온 210쪽부터 나머지 500쪽을 읽는 데 하루가 채 안 걸렸다.



진화와 곰팡이


단세포 생물, 구조가 간단한 생물이 진화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수평적 유전자 교환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진화가 랜덤한 돌연변이를 테스트해 본 결과로서 아주 천천히, 세대를 넘겨 진행되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다. 그냥 서로 다른 개체들이 코드 일부를 나눠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곰팡이 A: "요즘 미세 플라스틱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단 말야. 그래서 플라스틱을 소화할 수 있는 코드를 사용 중인데, 너도 사용해 볼래?"

곰팡이 B: "어, 고마워. 마침 나도 그런 거 있음 사용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B는 A에게 해당 코드가 실린 유전자 부분을 받아 갈아 끼운다.



이게 사람한테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이런 장면이 연출 가능하다.

사람 A: "갑자기 말라리아가 대창궐 중이야. 이건 무슨 약으로도 못 막는 신종이라는데, 걱정이야."

사람 B: "걱정 마. 마침 내게 겸상 적혈구 코드가 있으니 나눠줄게."

사람 A: "아, 그러면 되겠네. 정말 고마워."

그리고 A는 B에게 코드(유전자)를 공유받아 자신의 적혈구를 말라리아에 강한 겸상 적혈구로 바꾼다.



곰팡이는 물론 박테리아도 수평적 유전자 교환에 능하다. 항생제를 우습게 보는 슈퍼버그가 이런 식으로 세상에 발을 들이고는 한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가진 유기체가 박테리아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록 박테리아가 가장 민첩하고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유전물질은 생명의 모든 영역에서 수평적으로 교환되어왔다. (232쪽)


공진화 역시 진화의 핵심 메커니즘 중 하나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소가 원래는 진핵생물과 전혀 상관없는 박테리아였다는 설은 이제 거의 확정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 곤충들의 세포에서 박테리아를 품은 박테리아가 발견된 것이 아주 강력한 증거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를 받아들여 미토콘드리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를 받아들여 엽록소라 이름 붙인 것은, 수평적 유전자 교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러한 공생 관계를 생각해보면, 개체라는 것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척박한 우주 환경에서 살아남을 생물의 후보로서 지의류(lichen)가 뜨고 있다. 지의류라는 것은 복잡한 다세포 유기체다. 조류와 균류의 공생 복합체다. 조류와 균류가 단독으로 살 수 없는 환경에서도 지의류는 살아남는다. 스웨덴령 라플란드에서 발견된 지의류는 9천 년 이상 살아왔다고 한다. 지의류가 뭔지 찾아봤더니, 리트머스 이끼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석이버섯이 지의류다.


어떤 화가가 판매 중인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컵셉 아트 (2,995달러다)


곰팡이의 마음


오피오코르디셉스라는 곰팡이는 개미를 감염시켜 번식한다. 곰팡이의 좀비가 된 개미는 나무를 타고 높은 위치로 이동해서 가지를 꽉 물고 자기 몸을 고정한다. 그런데 감염된 개미를 해부해보니, 개미의 뇌에서는 곰팡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뇌를 제어하지 않고 곰팡이는 대체 어떻게 개미를 조종한 걸까? 왜 뇌를 제어하는 간편한 방식 대신, 팔다리를 비틀어 조종하는 힘든 방식을 택한 걸까.


곰팡이가 조종하는 것은 개미뿐이 아니다. LSD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실로시빈은 환각버섯이라 불린다. 즉, 균류다. LSD와 마찬가지로, 실로시빈의 환각은 엄청난 경험이다. 실로시빈 실험 참가자의 70% 이상이 이때의 경험을 평생 가장 의미 있는 경험 5개 중 하나라 말했다. 이들은 실로시빈 경험을 첫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이나 부모가 세상을 떠난 순간과 비교했다. 이들은 사람들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임사체험과 유사한 반응이다. 실험 참가자들 대부분이 유물론자 또는 무신론자였다는 사실도 언급해야겠다.


실로시빈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해냈을까? 뇌 스캔 결과, 실로시빈은 뇌 활동을 감소시킨다. 활동이 위축되는 영역은 바로 디폴트모드네트워크(DMN)다. 자의식을 관장하는 그 부분 말이다. DMN은 좌뇌를 심하게 다치거나 명상을 통해서도 제어할 수 있다. 


잘 방어된 자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으며 오락가락 흔들리거나 타자 속으로 차츰 녹아들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더 큰 어떤 것과의 합일, 그리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계감이다. (311쪽)


실로시빈은 한때 <재배 가이드>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불법화되었다. LSD와 함께, CIA의 정치적 공작에 의해 불법화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히피들이 주로 이 약을 사용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LSD는 아무런 중독증상이 없으며, 치사량은 카페인보다도 높다. 대마초보다 안전하면서 훨씬 더 강한 환각을 선사한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를 헌정한 비틀즈는 물론, 스티브 잡스도 LSD를 예찬했다.


인공지능이 표현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하나 더



맺는말


환경 문제의 백기사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곰팡이다. 이들의 엄청난 적응력과 진화 능력은 시간도 얼마 들이지 도 않고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멕시코에서는 기저귀를 분해하는 느타리버섯이 개발되었다. 이 버섯은 두 달만에 1회용 기저귀의 무게를 85% 줄인다. 담배꽁초를 소화하도록 균류를 훈련시킨 사례도 있다.


문제는 균류가 우리에게 너무 생소하다는 거다. 피터 맥코이는 균학을 독학한 힙합 아티스트다. 그는 마이코로고스라는 온라인 학교를 만들었다. 풀뿌리 수준에서 균학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풀뿌리 균학자 한 명이 열 명을 가르치고, 그 열 명이 각각 열 명씩을 가르치면 백 명이 되고, 곧 천 명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균사체가 퍼져 나가듯이. (477쪽)


균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류의 미래는 곰팡이와 공생을 잘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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