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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15. 2023

한 사람을 이토록
이해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

프리모 레비와 책으로 대화하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 중 단연 최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가 이 책을 펴낸 다음 해에 자살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내린 자신의 결론을 믿지 않았다. PTSD 생존자가 사건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자살하는 것이 희귀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맹렬하게 고뇌했던 그가 아쉬운 선택을 한 것은 슬프다.


그렇다. 나는 책으로만 접한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을 존경한다. 아니, 숭앙한다. 그래서 그의 책을 한줄 한줄 다시 읽고, 그의 생각을 다시 뒤쫓아가 보려 했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그가 써낸 첫 수기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말한다. 수용소라는 것은 냉철한 사유의 산물이다. 논리적 결론이다.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적을 절멸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장치다. <좁은 회랑>에서 대런 애쓰모글루가 말하듯, 아이히만은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박해하는 시스템을 개발한 공로로 고속 승진을 한 인물이다.


프리모 레비는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내적 해방을 위한 글이라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생각할 때, 그의 더 근원적인 욕구는 다른 재난 생존자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그 사건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일들이 모두 허구가 아님을 밝히는 것은 굳이 필요하지도 않으리라. (17쪽)



살아남았다는 사실의 무게


홀로코스트 문학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생각 중 하나는 이거다. 가라앉은, 즉 죽어간 사람들에 비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비열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리모 레비라는 냉철한 지성인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홀로코스트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해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숙고한 결론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중략) 기타 등등에 임명되었던, 특별히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197쪽)


자신의 도덕 세계의 한 부분이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생존하는 것은, 강력하고 직접적인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 한, 순교자나 성인의 기질을 타고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게만 허용될 뿐이었다. (203쪽)


저자는 독일군이 철수하고 나서 카베(병동)에 방치된 수많은 환자들을 먹여살린 3명 중 한 명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지식을 가지고 환자들의 생존 확률을 높였다. 배터리를 활용할 줄 알았고, 양초를 제조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이타적인 행동들이다. 그런데 이런 프리모 레비가 말한다. 구조된 자들은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고.


이는 선발이라는 잔학 행위에 의해서도 드러난다. 선발이란 노동력으로서 가치가 없는 포로들을 추려내 제거하는 결정이다. 물론 선발은 자의적이다. 사람의 목숨에 대한 결정임에도, 나치들의 이 결정은 작위적이다. 그러나 이 작위성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예측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면,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겠는가. 포로들은 모래 위에 논리를 세운다.


젊은이들끼리는 노인들이 모두 선발될 거라고 말한다. 건강한 사람들끼리는 병든 사람만 선발될 거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제외될 것이다. 독일 유대인도 제외될 것이다. 낮은 번호들도 제외될 것이다. 너는 선발될 것이고 나는 제외될 것이다. (278쪽)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선발도 생존도 구원도 모두 작위적이다. 어떤 논리도 없다. 레비 스스로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 경계선을 그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거듭 말하지만, 1987년 그는 선택을 통해 이를 보여주었다.


지금 나는 아우슈비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시대 그 누구도 신의 섭리에 대해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345쪽)


믿고 싶은 것과 마음이 그냥 믿어버리는 것은 다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도 레비는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책이 나온 이듬해, 레비는 자살했다. 그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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