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Feb 06. 2018

뿌가쵸프의 폭력 대 황제의 검열

[서평] 뿌쉬킨의 <대위의 딸>

예전에 러시아 군인을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내가 흠모해 마지않는 도스토옙스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는 자꾸 이야기를 뿌쉬킨으로 돌렸다. 뿌쉬킨은 정말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천재라는 것이다. 그런 뿌쉬킨을 나는 최근에야 읽었다.

재판 같은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달콤한 재회의 순간이 어쩌면 몇 달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했다. (170쪽)

주인공은 앞서 러시아의 사법제도에 대해 한바탕 비판을 늘어놓은 사람이다. "건전한 법률적 사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절차인 피고의 자백을 포함하고, 그것을 유도하기 위한 고문이 사실상 허용되는 것이 계몽 군주 시대에 자행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 있다. 재판이 두렵지 않다는 말은 결백함을 강조하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재판 지연, 즉 절차적 문제에 염려하고 있지만, 실체적 문제, 즉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주인공은 아직 러시아에 당도하지 못한 계몽시대를 미리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18세기 사람이지만, 19세기를 살아간 뿌쉬킨의 아바타다. 뿌쉬킨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 위주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역사를 끌고 가는 에너지를 바라보려고 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제국군과 뿌가쵸프의 마지막 결전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전쟁으로 인한 민초들의 고통은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주인공은 뿌가쵸프가 잡혔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왜 전사하지 않고 잡혔냐는 원망의 독백을 한다. 주인공이 자신과 약혼자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뿌가쵸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 인지상정이지만, 뿌가쵸프를 바라보는 뿌쉬킨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다. 뿌가쵸프야말로 유럽의 마지막 봉건주의가 러시아에서 사라져가는 모습을 상징하는 인물이니 당연하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뿌가쵸프 진영의 작전 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모두들 전우처럼 격의 없이 어울렸고 대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공대하는 눈치는 없었다. 대화는 아침에 있었던 습격, 폭동의 성공 그리고 향후의 작전 등에 관한 것이었다. 저마다 자기 자랑을 해대며 의견을 개진했고 또 자유롭게 뿌가쵸프를 반박했다. (107-108쪽)

그런데 뿌가쵸프에게 해방된 주인공이 이웃 마을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황제군의 작전 회의 장면은 전혀 딴판이다. 뿌가쵸프 진영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주인공이 공격을 주장하는데도, 다른 관리들은 요새의 벽 뒤에서 방어에 치중하자고 주장한다. 토론을 마무리 짓는 장군의 결론은 다수의 의견을 따라 방어에 나서자는 것이다. 원래 결론이 정해진 회의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관리들은 주인공이 가져온 정보를 분석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사령관의 의중을 읽고 이미 정해진 결론을 편든 것뿐이다. 뿌가쵸프 진영의 회의와는 전혀 다르다.

<대위의 딸> 표지 © 열린책들


뿌가쵸프 진영을 빠져나와 황제 진영으로 말을 달리던 주인공은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뻐하는 것도 잠시. 그는 뿌가쵸프와 공모를 했다는 혐의로 수감된다. 진지를 지키던 러시아군 장교 중 홀로 살아남은 이유를, 제정 러시아는 납득하지 못한다.

귀부인 차림으로 변복하고 산책 나온 예카테리나 2세에게 소청을 넣은 마리아 덕분에 주인공은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두 사람이다. 이것이 과연 동화적 해피 엔딩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눈을 감아 보면, 마을을 점령한 뿌가쵸프 일당이 목매달아 죽인 사령관, 따라 죽은 아내, 그리고 약탈당한 집들이 떠오른다. 뿌쉬킨은 시대가 태평하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제의 자비로 교수형을 면제받은 주인공의 운명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 아이러니다.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이 말하듯, 뿌쉬킨에게 제정 러시아는 커다란 감옥이었다. 더구나 이 작품을 쓸 당시 그는 황궁에서 살았다. 호사를 누리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황궁에 유폐되어 검열당하는신세였다. 그만큼 그의 천재성은 제정 러시아를 위협했던 것일까? 내가 만났던 러시아 군인은 소련이 아닌 러시아의 군인이었다. 민중의 친구라서가 아니라 러시아의 연인이라서 뿌쉬킨은 사랑받고 있었다.

뿌쉬킨은 자신의 조국에서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일어날 것을 알았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조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를 향해 발걸음을 크게 하는 오늘을 그는 어떻게 볼까? 문인이 황궁에 유폐되던 자신의 시대와 비교해 지금의 러시아가 더 나은 곳이라고 생각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속 아이에게 동화는 현실일 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