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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21. 2023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윤리적 존재

[책을 읽고] 리사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이 책은 뇌와 관련된 7개, 또는 7과 1/2개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의 결론에 도달한다.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는 윤리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뇌과학을 재료로 하는 한 편의 잘 짜여진 논증에서 나온다.



0번 메시지부터 7과 1/2개의 메시지를 하나씩 살펴보자.


0.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예측해서 가치 있는 움직임을 만드는 것, 즉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를 해내는 것이다. 즉, 뇌가 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1. 뇌는 하나다. 삼층 구조도 뭣도 아니다. 삼위일체 뇌 가설은 오래전에 반증되고 폐기되었음에도 그 유용성으로 인해 남용되어 왔다.


2. 뇌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머릿속뿐 아니라 장에도 많이 분포하는 신경들의 네트워크다. 몸 전체에 신경이 골고루 분포하는 문어를 보면 이 사실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3. 어린 뇌는 스스로 세계와 연결한다. 유전자가 완성된 뇌를 만드는 과정에는 적절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


4. 당신보다 뇌가 먼저 안다. 뇌는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다.


이 내용은 <대변인 비유>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일단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알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가 하지 않은 일을 변명해야 하는 대변인 같은 처지에 있다. 유명한 실험에서, 버튼을 눌러야지 하고 생각하는 뇌파는 버튼을 누르고 나서 0.5초나 지난 다음에 감지된다.


그렇다면, 대변인이 자기가 변명해야 하는 일에 책임이 없듯이, 우리도 우리 행동에 책임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다. 우리의 많은 행동은 자동조종 모드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자동조종 모드가 그런 방향으로 길들여진 것은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행동이 자동화된 것은 당신의 뇌가 갖가지 행동을 개시하는 각기 다른 예측을 하도록 스스로 세부조정하고 가지치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그거서은 자유의지의 한 형태다. (152쪽)


5. 우리의 뇌는 다른 뇌들과 심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즉, 우리는 아기들(3강)과 우리 자신(4강)은 물론, 타인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6. 인간의 뇌는 다양한 마음을 만든다. 다양성이 기본이다. 뇌는 보편적이지만, 마음은 보편적 특징이 더 적다. 다양한 가지치기와 미세 배선에 따라 다양한 특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당신의 뇌는 매 순간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요약하고, 당신은 그 요약을 정동(affect)으로 느낀다. (194쪽)


자, 이제 대망의 7번째 메시지다.



7. 인간의 뇌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제목만 읽었을 때, 나는 뇌의 시뮬레이션 기능 이야기인가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한 흐름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이 장의 이야기는 뇌가, 즉 인간이 외부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인류세(Anthropocene) 이야기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의 뇌(5강)에, 그 다양성(6강)에, 그리고 환경(7강)에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우리는 사회 현실도 만들어낸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공통 서사>다. 뇌가 사회적 현실을 만드는 기능은 다섯 가지 기능에 의한다. 창의성(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 모방(copying), 협력(cooperation), 그리고 압축(compression) 등 5C다.


두문자를 맞추기 위해 동원된 <압축>이란, 다름 아닌 추상화 능력이다. 추상화는 창의성을 가능케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현실을 우리는 소통, 모방, 협력이란 기제들을 통해 공유하고 확장한다.


침팬지는 흰개미 구멍에 막대기를 찔러넣어 간식을 확보한다. 이는 막대기가 구멍에 잘 들어맞는다는 물리적 현실에 기반한다. 만약 특정 막대기를 뽑는 침팬지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면, 이는 사회적 현실이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현실을 물리적 현실로 착각한다. 예컨대 피부색으로 인종을 구별하고 나면, 그 구별이 물리적 현실이라고 착각한다. 사회적 현실은 인류의 가장 큰 무기이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위험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현실은 조작에 취약하다. 민주주의 그 자체가 사회적 현실이다. (221쪽)


이것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자, 이 책의 결론이다. 과연 <뜻밖의 뇌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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