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형폐지론자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른다.
사형 집행이라는 판단은 나중에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고 해서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뉴스를 보다 보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야 하는 인물들을 자꾸 보게 된다.
이러니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이란 게 원래 그런 존재이기는 하다.
안네 프랑크가 말했듯, 우리는 모두 모순덩어리들이다.
나는
적극적 안락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존엄사를 지지하지만, 그것이 범죄에 악용될까 두렵다.
공정무역이라는 게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지만, 공정무역 제품을 집어들고는 한다.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을 만든다는 걸 알지만, 가공육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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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옹호한다.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다.
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런데, 최근에 책을 읽다가 난민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 세계 난민 인정율 최하위인 바로 우리나라의 난민 제도가 말이다.
일단 통계부터 보자. 위쪽 차트는 연도별 신청자 수, 아래쪽은 허가 수다.
역시나, 난민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난민신청자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체류하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신청이 반려되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고, 그것도 반려되면 소송을 걸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난민신청자들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활비를 지급받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과정은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사람들은 똑똑하다.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는, 취업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에 맞추어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브로커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서다.
소송까지 걸리는 시간이 5년이라고 가정하면,
어느 한 시점에 우리나라 내에서 난민신청자 자격으로 합법 체류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7.5만 명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신생아 수는 년 26.6만 명이다.
또 하나, 사람들은 통계나 일반론보다 구체적인 사실에 더 끌린다.
시리아 난민 통계 숫자가 아무리 기막히다 해도, 쿠르디라는 한 소년의 죽음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온다.
3년 전,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다.
예멘 출신 학생이 둘이나 있었다.
예멘?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이 무더기로 접수되던 바로 그 예멘이다.
예멘은 그때도 지금도 내전 중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호화 그 자체였다.
내전이 벌어지든 말든,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어떤 사람들은 난민 신청을 할 만큼의 여유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그저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