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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05. 2023

재미없는 소설은 사양합니다

[책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 <외사랑>

23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1999년 8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주간문춘>에 연재되었다고 한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 게다가 메시지까지 얹어서 소설을 쓰려는 생각만으로도 대단한데 

그걸 실행하기까지 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지성인에 대해서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 재미다.

한참 재미있는 시점에서 드라마가 끊기며 <카페 ㅂㄴ> 로고가 나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그 카페를 싫어하는 것이야말로 그 드라마의 흡인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20권도 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어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백야행>, <녹나무 파수꾼>, <방황하는 칼날> 같은 불후의 명작도 만났고,

<라플라스의 마녀> 같은 억지 이야기도 만났으며,

<브루투스의 심장>이나 <백조와 박쥐> 같은 용두사미 작품도 만났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범작이라 하더라도 흡인력은 있다.

<브루투스의 심장>은 졸작임에도, 결말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한다.


그런데 드디어, 그렇지 않은 책을 만났다.

이렇게 지루하고 하품이 나며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처음이다.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중 제일 재미없는 것이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전광석화처럼 대답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메시지는 훌륭하다.

그의 젠더 감수성은 책이 나오고 20년도 더 지난 지금 시점에 봐도 훌륭하다.

지금 시점에 봐도 아방가르드한 수준이다.


소설가라서 소설로 쓴 것이겠지만, 이건 소설이 아니라 사설이나 에세이로 나왔어야 할 이야기다.



사족 하나


굳이 살인 사건을 끌어들인 점도 아쉽다.


경찰이 초동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용의자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성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는 용모를 범죄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히가시노가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스로 규정한 추리소설가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다니, 아쉽다.

살인 사건이 없었다면, 이 극단적으로 재미없는 소설이 더 재미 없었을까?

잘 모르겠다. 더 내려갈 데가 있기나 할까?



사족 


책 리뷰에 나쁜 말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 책에는 유난히 많다.

비판 포인트는 두 가지인데, 재미없다는 비판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트랜스젠더 내지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댓글이 상당히 많다.


장애인이나 흑인을 비하하는 댓글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다.

차별의 사다리 제일 밑바닥에 누가 있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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