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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준배 Sep 21. 2024

[시] 반찬가게 아줌마

반찬가게 아줌마


손녀딸이 준 분홍 머리핀을 하고

공주가 되었다는

우리 동네 반찬가게 아줌마는

만 원짜리 파김치를 칠천 원에 주셨다.


고춧가루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배추 한 망에 오만 원이 넘는다며

입꼬리를 풀지만

반찬통 뚜껑을 닫으며 메추리알을

덤으로 얹는다.


빈 골목마다 적막히 스며든 숨비소리,

담배 냄새 밴 바람이 불 때마다

반찬통들을 한 번 덮어주고,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손님을

기다리며 냉장고 문을 닫는다.


분홍 머리핀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허공에 손짓을 흩뿌리고,

구겨진 계산대 영수증을

하나 둘 모아 비닐봉지에 넣는다.


손녀딸 웃음을 마음속 어딘가에

살며시 접어두고,

머리핀을 매만지는

우리 동네 공주님 등 뒤로

파김치 냄새가 고단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2024.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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